차종관 목사 (세움교회)

“어느 정도 논란이 될 줄은 예상 했지만 전 사회적인 이슈로 불거질 줄은 상상도 못했다.”
얼마 전 우리 사회에 신드롬에 가까운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던 영화 ‘도가니’의 황동혁 감독이 어느 신문사와의 인터뷰 때 한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가 새삼 화제가 되었다. 공 작가는 소설 ‘도가니’를 쓰게 된 것은 “신문기사 한 줄 때문이었다.”고 했다.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 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라는 문장이었다. 작가는 “그 한 줄의 글이 내 인생의 1년, 혹은 그 이상을 그때 이미 점령했다”라는 말로 소설을 쓰게 된 이유에 대하여 말했다.

필자는 수년 전 함께 학업을 하던 후배의 가정에서 일어난 일을 기억한다. 이제 3살 정도 된 아이가 복층 구조로 된 자기 집 2층 계단에서 그만 실수로 아래층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다. 아이는 아래층에 있는 모서리에 인중(코의 밑과 윗입술 사이)을 부딪혀 심한 상처를 입었지만, 아이는 당연히 자지러지게 울고 소리쳐야 했는데, 울기는커녕 새파랗게 변한 얼굴빛을 하고 입만 크게 벌린 채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사람이 과도한 통증을 경험할 때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고 속으로 운다는 의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아픔이 심할 때 사람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운다는 것이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 재판장에서 소리를 낼 수는 없었지만 자신들이 경험한 치욕스런 아픔을 외면한 재판장의 판결에 그만 치를 떨면서 울었다는 것이다.

이들의 소리 없는 울음소리를 듣고 기사를 썼던 인턴 기자는 특별한 귀를 가진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그 당시 그들의 아픔을 또 다른 타자(他者)로써 경험한 것이다. 그는 공감의 언어를 통하여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은 것이다.

성경에는 반복되어 사용된 의미 있는 말들이 많다. 그 중에 ‘외치다, 부르짖다, 소리치다’라는 뜻을 가진 희랍어의 ‘크라조’라는 동사이다. 이 말은 성경에 여러 곳에서 사용되었다.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의 외침(마 27:46), 두려워 물속에 빠져 들어가던 베드로의 외침(마 14:29-30), 그리고 자신의 장애를 고쳐 달라고 예수께 부르짖었던 바디매오의 외침(막 10:46-47)등이 있다. 이렇게 사용된 단어의 뜻 가운데 ‘부르짖다’(cry out)라는 뜻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지만, 이 말의 또 다른 뜻이 ‘소리 없이 울부짖다’(scream wordlessly)라는 뜻도 있다. 아픔과 억울함, 그리고 괴로움을 나타낼 때 사람은 소리를 지르기도 하지만, 차마 소리를 지를 수 없을 만큼 아프고 힘겨울 때 소리 없이 아픔을 표현 한다.

이 땅의 교회가 소리 내어 우는 사람들의 큰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일 뿐만 아니라 너무 고통스럽고 힘겨워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울부짖고 있는 사람들의 아픔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 상처와 마음의 상함이 너무 커서 소리 내지 못하고 울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소리 내어 울고 있는 사람에게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아닐까? 아픔과 외로움에 대한 회복이 곧 치유일 텐데, 아직 상처에 어느 누구도 손을 대어 만져주지 못해서, 들어주지 못해서, 여전히 상한 마음이 분노가 되어 소리 없이 울고 있는 우리의 이웃은 없을까?

예수님의 성육신을 ‘케노시스적 사건’이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즉 ‘자기 비움’ 내지는 ‘낮아짐’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신학적 이론을 넘어서서 이 사건은 하나님이 우리와 같아지신 사건이라는 것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신적 표현으로써 이 땅에 오신 사건이다. 당시 소외되어 외로웠던 사람들을 만난 예수께서 아무도 듣지 못했던 그들의 아픈 외침에 귀를 기울이셨고 그들을 들으셨고, 그들은 회복 되었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그리고 성령강림주일과 교단 총회가 열리는 달이다. 시대적 화려함에 가려진, 그리고 성장과 확장이라는 시대성에 숨겨진 우리 공동체 속에서 들려오는 진정한 아픔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다. 소리 낼 수 없지만, 소리 내지 않지만, 그러나 아파하고 울고 있는 공동체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는 5월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