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주선교의 거점 ‘용정성결교회’ 방문
2010년 9월, 본사 편집위원 및 직원들이 만주선교의 거점인 ‘용정성결교회’를 방문했다.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에 위치한 용정성결교회는 성결교단의 최초 선교지로서, 규암교회 박기래 집사가 1919년 2월 북간도로 이주하여 박상환, 한치국 등 3인과 30여 명의 교포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되었다. 6년 뒤에 오원근 전도사가 목회자로 청빙돼 정식으로 설립됐으나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폐쇄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건물노후로 헐릴 위기에서 2000년, 기성과 예성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복원돼 새로운 교회당 건물로 탄생했으며, 용정시의 새로운 명소로 소개됐었다. 당시 기성에서는 예배당을, 예성에서는 부속건물을 맡아 봉헌했으며 봉헌식에는 양교단 임원들뿐 아니라 현지의 유력한 공산당 간부들이 참석해 언론에 크게 보도된 바 있었다.
그러나 본사 임직원들이 방문했을 때는 용정시에서 관리하는 ‘생활 박물관’으로 바뀌어 큰 아쉬움을 남겼다. 복원당시에는 시 지정 문화재로 지정돼 관리되어 왔으나 선교사역의 부작용으로 인해 십자가와 돌비, 성결예배당 문구 등이 제거된 채 민속 박물관으로 용도가 변경된 것이다. 방문했을 당시 내부는 일상생활의 물건들과 행상, 무속인들이 쓰는 굿을 하는 도구 등이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교회 밖도 상당부분 훼손되어 있었다. 건물 밖의 표지문과 내부 기록에도 한국성결교회에서 복원하였다는 내용이나, 이 건물이 언제 처음으로 지어졌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성결교단의 중국선교 교두보였던 용정성결교회가 선교유산과 민족정신을 빼앗긴 채 외형만 둥그러니 남겨진 것이다. 성결신문에서는 시대적 사명감으로 만주까지 뻗쳐졌던 초기 성결교회의 선교 기개와 현재 중국선교가 당면한 난관의 현장을 기획취재를 통해 성결가족들에게 알렸다.
2. 전남 완도군 금일도 취재
2010년 5월 15일, 전남 완도군 금일도로 성결신문사 직원들이 낙도 및 오지교회 탐방길에 올랐다. 금일도는 인구 1,500여명의 비교적 큰 섬으로 15개의 교회가 세워져 있으며, 이중 예성 산하 교회만 6개에 이르고 있다. 교단 소속 교회는 섬을 중심으로 대부분 외곽에 위치해 있으며, 지난 1988년 용항리교회를 시작으로 궁항리교회, 동송교회, 월송교회, 주사랑(도장리)교회, 일정리교회가 창립됐다. 당시 취재수첩에는 이런 글귀가 메모되어 있었다. “어느 교회나 아픔과 역경이 있겠지만, 이곳 섬 교회들의 역경과 고통은 우리가 아는 그 이상이었다.”
본사에서는 육지에서 배를 타고 또다시 바닷길을 헤쳐가야 만나는, 낙도 및 오지의 교회들을 지면에 담았다. 그들의 삶과 목회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 속에 꺼내놓았다. 당시 용항리교회 김태수 목사는 “이런 환경과 조건 속에서 묵묵히 목회에 전념하려면 나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지 않으면 섬교회 목회는 너무나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산중턱에 위치한 궁항리교회는 급수시설이 매우 열악했다. 생활용수는 물론이고 식수조차도 300m를 오르내리며 길어 마시는 형편이었다. 월송교회는 교회를 시작할 때, 무속신앙이 강한 상태에서 목사가 구타당하고 교회의 집기가 부서졌던 안타까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원래 소나무 숲이 좋아서 솔개라고 불려왔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마을이 분리되고 동송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동송리 동송교회 이야기, 도장리교회에서 이름을 바꾸고 새롭게 도약하고 있는 주사랑교회, 마지막 시대에 쓰임 받는 교회가 되겠다는 일정리교회까지 하루 내내 숨 가쁘게 뛰어다녔다.
파란색 물감을 풀어놓은 남해바다의 추억, 그러나 그 안에 담겨진 눈물과 무릎의 헌신은 세상 그 어느 이야기보다 순수하고 감동스러웠다. 이날 본사에서는 금일도에 위치한 6교회에 선교비를 전달했다.
3. 오지에 위치한 강원도 교회 탐방
2010년 10월, 강원도 산골마을을 향해 본사 편집진들이 바쁜 채비를 차렸다. 지난 5월 남쪽 섬마을 탐방에 이어 산골이야기를 지면에 담기위해서이다. 서울에서 3시간여 거리. 홍천에서 북쪽으로 조금 더 꼬불꼬불한 산길 도로를 달려 이내 작고 아담한 분지에 위치해 있는 풍성한교회를 만났다. 1년여 전에 이곳에 부임했다는 김국현 목사는 “농촌교회의 사역은 생활 속 사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농한기를 중심으로 경로당을 찾아 두부나, 콩나물 등 밑반찬을 전해드리며 친밀감을 쌓아 가고 있었다. “생활 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경제적인 면이나 여러 가지로 인해 그 이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기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밀착형 선교를 해나갈 예정입니다.” 지역환경에 맞는 전도법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었다.
정선의 지경교회 목회 이야기도 함께 실었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의 좁은 도로의 끝에 걸린 유천리는 전형적인 강원도의 산골마을이었다. 마을의 위치 탓에 마을 문화는 일반 사람들의 그것에 비해 몇 걸음은 느린 편. 박래철 목사는 불교와 유교사상이 뿌리 깊은 지역에서 말 그대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2000년 원인모를 화재로 교회가 전소되었지만 전국교회 성도들의 성금과 지방회의 후원으로 1421.48m²(430평)의 토지를 구입하고 142.14m²(43평)의 예배당을 새로 재건할 수 있었다. 농촌교회 선교가 대부분 그렇듯 이곳에서의 선교도 관계전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당시 본지는 지경교회 탐방이야기를 끝내면서 이렇게 적었었다. “유난히 맑은 가을밤 홀로 빛나는 예배당의 십자가만큼이나 지경교회는 내일도 어제의 오늘처럼 그렇게 마을의 한 켠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발할 것이다. 그 빛이 지경교회가 화재로 전소가 되면서도 다시금 일어서고 두 번째의 씨를 뿌리게 했듯이, 자라게 하고 거두시는 분은 늘 하나님이심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성결신문사의 첫 번째 산골 이야기는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