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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와 봉사, 나눔과 섬김이라는 신앙의 모범을 선도하고 있는 성결신문은 창간이래 꾸준히 오지 선교와 사회봉사활동 등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과 이웃사랑의 실천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노숙인들의 곁에서 그들과 함께 했고, 몇 해 전에는 어느 땅에도 갈 곳 없는 난민들의 옆자리에 성결신문이 서있었다. 더불어 잘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성결신문의 하루하루는 그렇게 차곡차곡 쌓여져 가고 있다.
노숙인들과 함께한 무료급식 봉사활동
지난 5월 17일 오후 7시. 서울 영등포역 광장에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모였다. 20명으로 보였던 그들의 수는 몇 분 지나지 않아 100여명으로 늘었다. 여기저기서 나타난 노숙자는 마침내 500명을 훌쩍 넘겼다. 영등포역은 노숙자들이 풍기는 퀴퀴한 냄새로 가득했다. 인근 백화점을 빠져 나온 시민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코부터 막았다.
오후 8시, 밥을 가득 실은 1t 트럭 한 대가 역 앞에 나타났다. 노숙자 사이에선 작은 동요가 일었다. 수염을 기른 한 남자가 트럭에서 내렸다. 노숙자들을 향해 뛰어간 그는 반갑게 악수도 하고 포옹도 했다. 남자는 김치를 얹은 콩나물 국밥을 차례차례 나눠줬다. 본지 임직원들도 이 남자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노숙자들에게 밥을 퍼주고 국을 뜨며 그들과 함께했다.
밥사랑열린공동체 박희돈(53) 목사, 그는 성결대학교를 졸업한 예성인이다. 7년 전 그는 지방대학의 강의를 마치고 귀가하던 중 30대 여성 노숙자를 만났다. 그녀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속살을 드러낸 원피스를 입었다. 쓰레기 더미에서 버려진 컵라면 통을 찾더니 남은 국물을 후루룩 마셨다. 마침 강의료를 받은 다음 날이었다. 그녀에게 돈이라도 전할 요량으로 말을 걸었다. “왜 이런 걸 먹어요?” 여자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호기심은 커졌다. 밥을 사주자 그녀는 말했다. “먹을 게 없으니까 이렇게 살죠. 남자 노숙자들하고 같이 구걸을 하면 그 대가로 성폭행 당하고 임신도 하게 되니까…. 남들이 잘 때 먹을 걸 찾아야죠.”
박 목사는 영등포 역 노숙자에게 급식봉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노숙자들이 손 벌리기 전에 미리 찾아가 한 끼 식사를 대접하는 일. 그것이 자신에게 떨어진 숙제라고 생각했다. 이후 그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가산을 탕진해 가며 노숙자들에게 밥을 나르는 가장에게 주어진 것은 이혼서류였다.
목사가 이혼을 하다니. 주위에선 그를 향해 손가락질 했다. 가장 절친했던 사람들이 맨 앞줄에 있었다. 가정은 깨지고 친구들은 멀어지고…. 며칠 간 밤을 지새우고 노숙자 급식봉사를 가는 길. 뒤 따르던 차에서 울리는 경적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운전자가 차를 빼면서 욕을 해대는데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연이은 충격에 청력을 잃은 것이다. 이후 한쪽 귀는 아예 들리지 않고, 다른 귀는 가는 소리만 들린다. 걸을 때 중심을 잡지 못해 불편함도 많다.
그의 하루는 온전히 노숙자를 위해 바쳐진다. 오전 7시에 일어나 영등포역 인근의 작은 사무실에서 식단계획을 짠다. 전날 헤아린 노숙자의 수를 기준으로 저녁 식사량을 정한다. 일반적으로 500명~600명 분량의 식사를 준비하는데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오전에는 식당을 청소하고 야채를 다듬는다. 오후에는 시장에 나가 반찬거리를 마련한다. 오후 7시엔 모든 준비를 마치고 8시부터 영등포역에서 배식을 한다. 돌아와 설거지를 하고 나면 어느새 새벽이다. 결국 그는 밥 짓고 나눠주는데 하루를 보내는 셈이다.
박 목사의 미래도 오로지 노숙인들 뿐이다. “성결신문사처럼 후원과 봉사를 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분들의 뜻을 모아서 노숙자를 위한 대안학교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노숙자들 가운데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재교육을 시켜서 사회의 일원으로 키우고 싶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 인생도 성공한 거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박 목사는 이미 성공한 삶을 살아가는 청지기였다. 박 목사와 함께, 어두운 곳에서 희망을 찾는 성결신문의 발걸음도 분주하기만 하다.
난민들과 함께했던 겨울이야기
성결신문사는 몇 해 전 성탄을 며칠 앞두고 남산 밑에 자리하고 있는 한 NGO단체를 방문했다. 난민들의 쉼터이자 피난처였다. 단체의 설립정신과 추진이념을 이토록 명칭에 담아내는 기관이 몇이나 될까? 방문했던 이 단체의 정식명칭이 ‘피난처’이다. 난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그들의 난민신청 프로세스를 돕는 국내 유일의 난민지원 전문단체이다.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로부터 사역과 삶에 대해 들어봤다. 특별히 이날은 난민과 난민자녀들을 위한 성탄행사를 인근교회와 협력해 치르고 있었다. 피부색은 달랐지만 그들의 얼굴에 모처럼만에 기쁨과 평안이 찾아왔다. 첫 성탄의 축복처럼….
이날 성탄행사는 남다른 의미가 담겨있었다. 무슬림국가나 힌두교의 토양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었다.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임을 고백했다. 이날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함께, 난민 부모들도 따라 웃었다. 피난처와 교회에서 준비한 율동과 찬양, 레크리에이션과 식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참된 친교를 경험했으리라.
‘피난처’에서는 매주 목요일이면 난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태권도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또 토요일에는 열국아이학교를 통해 아이들에게 복음의 씨앗을 심고 있다. 평소에도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왔던 난민가족들, 이번 성탄에는 사람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누리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인류와 개인의 역사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라면, 강제적 이주 역시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복음에서 소외된 이들이 외부적 요인에 의해 자국을 떠나게 됐고, 결국은 한국 땅에서 저희를 통해 복음과 사랑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외부의 강압적인 환경이 아니었다면, 결코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들을 수도 깨달을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대표는 사도행전 8장의 예루살렘에 닥친 핍박이, 소위 ‘종교적 난민’들을 통해 복음의 확산을 가져온 것처럼, 거대한 구속사의 통찰력으로 난민문제를 접근해가고 있었다. 이런 그의 소명이 ‘서울대 법대’, ‘사법고시 1차 패스’라는 세상의 캐리어를 분토와 같이 버린 이유이기도 하다.
최근 이 대표는 20년간의 현장경험을 토대로 제도의 허점이나 보완책 마련을 위해 관계기관에 법 개정을 촉구하고 있다. 그의 기도제목이기도 하다. “난민인정 기준이 지금보다 다양해져야 합니다. 심사기간이 단축돼야 하고, 난민심사 중에도 일정분야의 취업기회를 제공해줘야 합니다. 무엇보다 배타적 외국인 상을 버리고, 인간성, 존엄성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아직 난민들이 충분히 자신의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에, 정부의 정책이 난민들에게 따뜻하게 느껴지지 않기에 그래서 ‘피난처’와 같은 곳이 필요하다는 이호택 대표.
현재 ‘피난처’에는 20여명의 일꾼들이 동역하고 있지만, 언제나 일손이 부족하다. 본지도 작지만 후원과 역량을 더했다. 더 많은 예성의 가족들이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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