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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순절… 그리스도를 본받아
2013-02-21 오후 12:06:00    성결신문 기자   


‘그리스도를 본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충실하게 따르려고 했던 중세의 수도자 ‘토마스 아 켐피스’의 저서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를 본받아’는 마틴 루터, 존 웨슬리, 존 뉴톤 등 영적인 대가들을 회심시켜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삶을 살도록 영향을 끼친 책이기도 하다. 올해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이라 불리는 2월 13일을 시작으로 부활주일까지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 계속된다. 현대에 와서는 ‘40’이라는 숫자적 의미보다는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실천과 제자도를 다시 한 번 재확인하고 다짐하는 기간으로 지켜지고 있다.

본지에서는 사순절을 맞이하여 ‘사순절의 영성’이라는 주제아래 청빈, 절제, 겸손, 비움, 관용, 나눔에 대해 여러 목회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순절의 영성이란 그리스도의 길을 걷는 제자로서의 영성,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의 영성의 다른 이름이다.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다고 하지 않던가. 그리스도의 고난의 계절을 맞이해 십자가의 고난만 묵상하고 강조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나를 낮추고 나를 비우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 갈2:20의 말씀의 삶이 실천되기를 기대한다.

청빈-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청빈은 청렴하게 살기 위해서 가난해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청빈은 조금 다르다.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가난해 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가난이 물질적인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안에 가득 차 있는 탐욕과 욕망, 그리고 소유욕을 비우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이 비워지는 것이고 가난해 지는 것이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마 5:3)라고 기록되어 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곧 청빈한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스스로 비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마음은 채움으로 비워진다. 내 안의 탐욕과 욕망과 소유욕을 비우려고 하기보다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채워야 한다.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이 내 안에 채워지면 내 안의 탐욕과 욕망과 소유욕은 비워지게 될 것이다. 사순절에 금욕하므로 사람들에게 청빈함을 보여주려고 하기보다 내 안을 예수의 말씀과 가르침으로 채우면 마음이 가난해질 것이고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은 사람들에게 청빈하게 드러날 것이다.
김형선 목사(전주효일교회)

절제-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14:36)”라고 한 예수님의 간구는 구속사를 이루는 절제의 간구였다. 벧후1:6에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고 했고, 딤후2:22에는 가장 무절제한 청년시기에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했는데,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삼손(삿14:6)은 나실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들릴라라는 이방여인과의 무절제한 생활과 그 여인을 통한 블레셋인들의 계략에 그만 머리가 잘려 힘을 잃고, 두 눈이 뽑히며, 연자 맷돌을 돌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에 비해서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물리쳐서 감옥신세가 되었는데, 결국에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자신은 물론 그의 가족들도 대 가뭄에서 살리는 역할을 감당하였다. 절제의 생활은 생과 사를 오고갈 정도로 그렇게 중요했던 것이다. “성령의 열매 중에 최고 열매는 사랑이다. 그러나 절제는 사랑의 승리이다”라는 G.C.몰간의 말과 같이 절제의 생활로 그 열매를 맺는 사랑의 승리자가 되자. 날마다….
이성근 목사(은혜교회)

관용-“우리가 서로를 끌어안자. 우리를 미워하는 이들까지도 ‘형제’라고 부르고 부활의 능력으로 모두를 용서하자”(정교회의 ‘부활절 아침기도’ 중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의 모습을 조각한 베르너 괴릿츠(Berner Goeritz)의 목판화를 감상한 적이 있다. 특이한 것은 한 사내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매어달리는 사람의 무게로 팔이 아팠을 것이고, 손바닥의 못자국은 더 찢어졌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판화 속 예수님의 당겨진 팔은 더욱 가냘프고 긴장되어 보였다.

그러나 인자하신 주님은 눈을 크게 뜨시고 아픔을 참으며 매어달린 사람을 위하여 뺨을 대어 주신다. 매어달린 사람의 진지한 모습, 그를 온전히 받아내시는 주님의 관용…. 십자가의 핵심에는 타자가 적으로 남아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며, 자신 안에 가해자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그리스도의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수난은 주님의 찢겨진 몸을 가해자를 위한 기도로 바치셨던 거대한 관용의 사건이었다. “아버지, 이 사람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눅 23:34)
박성일 목사(하늘소망교회)

나눔- 마9장36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이 나온다. 여기서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은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느끼셨다는 말이다. 교회는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긍휼의 마음을 가질 수 있을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그 맛을 잃지 말아야 하고, 세상의 빛이니 그 빛을 세상에 비추라(마5:14-16)”고 하셨다.

그럴 때 세상은 그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하셨다. 이번 사순절을 맞이하여 어떤 행실을 통해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빌2장에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낮아지심과 나눔이 아니겠는가? 작은 교회인 우리교회는 12월에 개소한 ‘두날개지역아동센터’를 통하여 대림3동의 요호보 아동들을 섬기고 있다. 당연히 물질이 필요하고, 시간의 수고가 든다. 그러나 더욱더 나를 나누는 일에 힘쓴다면 나의 영육혼이 한 단계 성장하는 진보의 시간이 되지 않겠는가? 예수님처럼 자신을 나누므로 사순절 기간 동안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시기를 기도드린다.
문제영 목사(새소망교회)

겸손- 온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의 고난도 마다하지 않고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묵상하는 것은 매우 의미가 있으며,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따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겸손한 자’라고 소개하며 겸손을 배우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겸손의 배움을 통해 ‘마음의 쉼’을 얻는 유익이 있음을 알려 준다(마 11:29).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보여 주신 겸손의 모습, 즉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사람들과 같이 되심”은 ‘권리포기’를 의미한다.

또한 “종의 신분이 되어서 죽기까지 복종하심”은 온 인류를 위한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구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종의 신분이 되어 섬김의 자리로 내려가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리포기와 섬김을 통해 겸손의 극치인 ‘다 내려놓음’의 모범을 보여 주신 것처럼 겸손의 실천을 통해 사순절의 의미를 더욱 깊이 묵상하는 기회가 되며,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경험되는 ‘평안’의 유익이 있기를 소망한다.
전영호 목사(서삼교회)

비움-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는 사순절을 지내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을 바르게 배워야 한다. 주님께 배우는 비움의 영성은 쉽고 가볍기 때문이다(마 11:29).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본래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로 나타나신 것이다(빌 2:2-7).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철저한 ‘자기 비움(kenosis)’이셨다. 그는 자신을 비우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오셔서도 철저히 비우는 삶(케노시스 삶)을 사셨다.
 
예수님은 자신의 권리(Authority)와 특권(Privilege) 심지어 마땅히 받으실 영광도 내려놓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비우신 것이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은 이 땅에 오심부터 십자가에 죽으심까지 희생으로 드러났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사순절을 맞아 ‘비움의 영성’,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의 영성을 따라 공동체(가정과 교회 그리고 사회)를 위한 자기 비움이 필요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비움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나타남 같이 그리스도인 역시 희생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에 동참해야 한다,
윤형식 목사(동인교회)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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