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목회 사역기 |
진상만 목사(오산교회)
1990년 11월 15일, 오산이란 작은 도시에 예성이란 교단 아래 오산교회 하나가 세워졌다. 저는 아무 연고도 개척멤버도 없이 전도사의 신분으로 집사람과 단둘이서 이곳 오산 땅을 밟고 20여 평의 공간에서 생활하며 교회를 개척하였고, 참으로 부족하기 그지없는 사람이지만 주의 은혜로 목회를 시작하고 2년이 지나며 1992년 5월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주의 은혜로 교회는 조금씩 성장하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지난 몇 년 전 20주년을 지내며 무엇으로 20여 년간 지키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할까 생각 중에, 마침내 캄보디아 땅에 교회 하나를 건축해주기를 바라는 친구 선교사의 제의에, 기도 중에 결정하고 시작한 것이, 여러 가지 현지 사정으로 인하여 몇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건축이 완공되고 봉헌예배를 드리기에 이르렀다. 1,000여 평의 대지위에 예배당이 약60여 평, 목사관이 약20여 평, 그리고 화장실을 건축하고 담임자의 생활방편의 일부로 양어장 2개를 만들어 물고기를 기르도록 한 것이다.
현지에서 연락오기를 공사가 마쳤으니 와서 봉헌예배를 드려 달라고 하여 지난 3월 4일 이른 아침 교회를 출발하게 되었다. 그곳에 모인 이들은 어린아이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약 300여명이 모여 함께 예배하며 미리 준비해 놓은 음식으로 잔치를 벌이는데, 얼마나 감격적인지 나도 모르게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삼켜야만 했다. 그곳은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베트남 쪽으로 버스를 타고 약4시간정도 달려가야 갈 수 있는 ‘스와링’ 이라는 군 단위의 도시이다. 도시라고 해 봐야 사람들만 좀 많을 뿐 캄보디아란 나라 자체가 말해주듯 헐벗고 굶주린 어려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뿐이다.
오늘 이글을 쓰는 제 마음은 아직도 감동에 젖어 글을 쓸 뿐, 이 작은 일로 인하여 자랑이나 하고파 전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부족한 사람의 견해로 느끼며 감히 드리고 싶은 말씀 한마디가 있다면, 이제 우리 한국 교회는 나누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미 고인이 되셨지만 저의 신학교 은사이신 모 교수님이 귀가 따갑도록 들려주신 말씀이 새삼스레 생각나는 것은, “나는 시장바닥 길거리 옷을 입어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눌 때에는 최고의 것을 주어야 한다”며 자신은 1만 원짜리 구두를 신으면서도 후배들과 어려운 목회자들에게는 최고의 양복과 신발을 해마다 나누신 분이시다.
오늘날 교회들이 대형화 되어감에 있어, 그 물결에 휩싸여 내 교회 키우기에 급급하지 말고 그래도 교회가 스스로 설 수 있다면, 이젠 주위를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속의 미지의 땅들과 우리 주위의 어려운 이웃 교회들을 말이다. 혹 이 글 자체가 선배나 어른들의 귓가에 정말 교만한 소리가 아닐까 하여 심히 두려운 마음과 염려하는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오니, 십분 이해하시기를 바라며 우리 모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들을 늘 생각하며, 입으로 고백하며, 행동으로 옮길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