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회지상강의
2013년 목회자하계수련회가 8월 19일부터 21일까지 양양에 위치한 오색그린야드호텔에서 열렸다. 새벽집회와 저녁집회가 3번씩 열렸고, 5 번의 특강이 있었다. 그중 찬양과 간증의시간을 제외한 특강을 3면과 6면에 나누어 지면에 싣게 됐다. 지면관계상 발표자료 전문을 다 실을 수는 없으나, 수련회에 참석하지 못한 목회자들에게는 새로운 도전과 교훈을, 이미 참석한 목회자들에게는 강의의 감동을 되새기는 특집이 되길 기대한다. 이 지면에는 강의안을 축약해 실었다[편집자 주]
노영상 목사(호남신학대학교 총장)
헬라어로는 생명을 말하는 단어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비오스’이며 다른 하나는 ‘조에’다. ‘조에’는 내연적인(intensive) 생명을 말하는 반면, ‘비오스’는 외연적인(extensive) 생명을 언급한다.
‘비오스’는 생명의 수단을 의미하는 말로 보통 사용되는 바, 우리의 생명을 유지되기 위해서는 건강과 물질(돈)과 생식능력(자녀)과 힘(권력) 등이 필요하다. 물질이 생명을 위해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그에의 집착이 지나치면 도둑질하게 된다. 생식(reproduction)도 마찬가지다. 생식과 자녀양육을 통해 우리의 생명이 이어지는 것이긴 하지만, 생식에 집착하면 성적 탐닉에 빠지게 된다. 우리의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권력과 힘이 필요하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집착은 사람을 거짓되게 한다.
누가 8:14에는 다음의 말씀이 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this life)의 염려와 재리와 일낙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을 못하는 것이요.” 여기에서 ‘생’이란 말은 ‘비오스’로 표현된다. 생의 껍데기로서의 ‘비오스’에 집착하면, 생명의 바른 열매를 맺힐 수 없다.
또한 재리로서의 물질, 일낙으로서의 육적이며 성적인 쾌락을 탐닉하는 것은 생명의 원리와는 멀다. 두 가지의 삶의 태도가 문제이다. 먼저는 생의 본질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을 보고 사는 것이며, 다음은 보이는 생이 전부인줄 알고 이생을 만끽하며 즐기려는 태도이다.
요한일서 2장 16절은 이생의 자랑에 대해 말한다. 여기서의 이 ‘생’도 ‘비오스’로 쓰여 있다. ‘비오스’가 모자라는 사람은 염려를 하며, 남는 사람들은 자랑을 한다. 이생에 대해 염려하고 자랑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생을 허비하기 일쑤다. 이처럼 ‘비오스‘에 대한 ’염려‘와 ’자랑‘은 다 부질없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 생의 껍데기만을 추구하면 알곡이 못되고 쭉정이가 된다.
요한복음에선 생명이란 개념이 ‘영생’이란 말로 종종 표현된다. 기독교가 말하는 영생은 시간적인 영원한 삶일 뿐 아니라, 공간적인 의미에서의 우주적인 삶 및 질적인 차원에서의 신적이며 본질적인 삶, 또한 무궁하고 종말적인 삶을 의미한다.
성경이 말하는 참 생명으로서의 알곡생명은 십자가의 능력을 통하여 부여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정신은 자기부정의 정신으로서, 십자가의 구원을 통해 신자는 자신을 넘어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의 구원은 우리를 얽매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축을 확장하여, 우리로 하여금 전지구적 샬롬에 이르게 한다. 자기 속으로 움츠려들어 퇴행하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그리고 종국적으로는 하나님을 향해 나아감에 의해, 우리는 진정되고 정화된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참 생명과 만나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십자가에 매어 닮을 통해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에 다다르며, 그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하며 우주적인 생명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넘어서서 하나님과 전체를 향해 나아가는 생명정신은 오늘의 현 문화를 비판한다. 자기중심주의(egocentrism),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 자민족중심주의(ethnocentrism), 남성중심주의(androcentrism), 자유방임의 경쟁적 자본주의(capitalism), 자기 종교밖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선교의 열정을 후퇴시키는 종교적 폐쇄주의 등의 문화가 초극의 대상이다. 더 큰 공동체로의 사랑의 길을 버리고 자기만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우리는 십자가에 나타난 알곡생명의 원리로 극복할 수 있다. 찰나적 쾌락과 이생의 향락만을 추구하는 일시적 삶의 향연으로부터 영원까지 펼쳐진 무궁한 삶의 차원을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조에’의 생명원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먼저 오늘의 지나친 개인주의적 경향 및 자기중심주의는 초극되어야 할 대상 중의 우선이다. 개인주의를 조장하는 교육환경, 개인주의에 입각한 정치경제구조 등, 우리의 보다 넓은 전망에의 투신을 방해하는 많은 것들이 있다. 나만의 자유, 나만의 성공을 위한 삶, 이기적인 경제활동 등의 한계를 넘어 우리 모두는 국민행복시대와 전지구적 행복시대를 향해 나아갈 수 있어야겠다. 인간을 만물의 중심이나 척도로 보거나, 인간의 생명을 절대화하여, 자연을 그에 부가하는 어떤 것으로 볼 때 생기는 부조화도 우리의 극복하여야 할 편견 가운데 하나다.
공동의 복리를 위한 공공선(common good)을 소중히 여기며 공동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는, 소읍과 같은 자치공동체로서의 지역마을공동체 만들기를 통한 오늘의 정치경제 체제의 대안 모색은 오늘의 시점에서 중요한 노력이라 생각한다. 또한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 블록간의 공생적 관계형성 및 세계정치와 경제를 규제하는 세계윤리(global ethics) 구상을 위한 너른 지평의 사고도 요청된다. 이와 같은 일들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감당되기 힘들며 서로 모여 논의하고 실천을 함께 하는 협의적 과정(conciliar process)을 필요로 할 것이다.
정의로운 평화로서의 샬롬의 길, 곧 사악한 세상의 길이 아닌 주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할 원리는 주님이 지시하신 생명의 길이다. ‘조에 아이오니오스’로서의 알곡생명의 원리만이 오늘과 같은 샬롬이 없는 세상에서 우리를 구할 수 있다. 주님이 주신 생명을 통해 이 땅에 정의와 평화 및 창조의 보전의 생명선교를 하는 신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