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범 목사(율암교회)
기도원 갔다 오는 길에 휴게소에서 고목을 조각하여 식탁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고 얼마냐고 물으니 입이 딱 벌어진다. 삼백만원이란다. 몇 백 년 된 나무인 것 같았다. 내뒹굴면 불에도 잘 안탈 쓸모없는 고목일 텐데, 구멍이 뻥 뚫리고 상처가 난 나무를 심오한 자태로 잘 다듬어 어엿한 가구를 만들어 놓았다.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풍상을 겪었을까? 예술품으로 만든 장인의 솜씨에 절로 숙연해 진다. 값을 물어본 것이 부끄러워진다. 몇 백 년 풍상을 겪은 고목 앞에서, 생명을 불어넣은 듯한 장인의 작품 앞에서 가벼운 흥정을 했으니 말이다.
인위적으로는 흉내 낼 수 없는 것이 상처를 통한 성숙이다. 목사는 수없이 상처를 받고 산다. 그리고 상처를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스스로 자책하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은혜의 보좌 아래에서 치료와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몸살을 앓고 난 아이가 한 가지 재주를 부리듯 지혜의 깨달음을 얻는다.
하나님 앞에서 풀어 놓아야할 기도 보따리를 가지고 올해도 정초에 매해 다녀오는 기도원에 다녀오는 길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을 받은 우리에게 “너는 내 것이라”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끝 날에 나를 조각하실 작품구상이 궁금하다. 그 상처 하나 하나를 하나님은 귀히 여기시고 밤새 펼쳐놓은 내기도 보따리 이야기를 친정집에 온 딸 이야기처럼 밤을 새워 다 들어주셨다.
어느덧 밤이 깊어 다윗의 아둘람 굴처럼 기도 굴에서 잠든 내 눈가엔 지난밤 흘린 감사의 눈물이 말라, 눈가에 보톡스 주사를 맞은 것처럼 당겨진다. 헛구역질 나던 간이 탱글탱글 해진 것을 느낀다. 새벽 심호흡을 하니 공기가 창자 속 깊숙이 빨려 들어가 깜짝 놀란다. 굴속에서 수많은 상처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그것이 메아리가 되어 자신의 영혼을 건강하게하고, 또 맘을 추슬러 목사의 사명에 자부심을 갖고 교회를 믿음으로 건강하게 하리라 생각한다.
상처를 받지 않으려 할 때 다툼과 갈등 생긴다. 예수님은 상처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의심 많은 도마에게 상처를 보여주셨다. 상처를 설명하지 않으셨고 그저 만져 보게 하셨다. 다만 만져 보게만 하셨는데 도마의 통곡이 되었고 사명이 되었다. 상처는 사랑의 표시(sign)인 것이다. 예수님의 상처가 도마로 하여금 철이 든 믿음을 갖게 하였고 사랑에 눈을 뜨게 하셨다. 스스로 무릎을 꿇고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을 했으니 사랑의 상처만큼 교만을 꺾고 의심을 치료할 치료제가 어디 또 있으랴!
하나님은 목사의 상처를 통하여 도마 같은 제자를 조각하여 만드신다. 베드로의 연약함을 통하여 받은 상처가 교회의 기초를 놓는 순교자가 되게 하셨다. 목사의 상처가 십자가다. 목사는 상처를 부끄러워 말아야한다. 설명 하지도 말아야 한다. 성도는 그 상처를 만져보고 확인하고 싶어 한다.
지난날 나는 상처에 대해 너무 많은 설명과 방어를 했고 억울함을 호소한 것을 돌이켜 부끄러워한다. 목사의 상처를 통하여 눈물의 천국 보물지도가 되게 하자.
목사의 보물은 기도와 눈물의 상처다. 가야바 뜰에서, 빌라도 앞에서, 입을 꾹 다물고 변명을 하지 않으신 예수님을 본받는 목사가 되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