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 대전 후 공산·반공 양대 진영의 냉전 갈등이 폭발한 대표적 사례인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평화와 한민족의 통일 염원을 파괴한 우리 민족의 아픔이자 동족상잔의 비극이었다. 세계 인류의 평화를 선도해야 할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는 6.25의 아픔을 우리 선진들이 보여주었던 순교 신앙으로 극복하고, 세속화와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종교다원주의 시대에 순교신앙으로 성결교회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편집자 주-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마오쩌둥과 소비에트 연방 스탈린으로부터 전쟁 허락을 받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경, 38도선과 동해안 연선(沿線) 등 11개소에서 경계를 넘어 대한민국을 기습 남침함으로써 한민족의 평화와 한민족공동체의 화합을 파괴하였다.
약 3년 1개월 동안의 전쟁 가운데 대부분의 산업시설이 파괴되었고, 수많은 군인과 민간인이 죽거나 실종되었으며, 이 때문에 발생한 남·북 간의 적대감은 64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치유되지 않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정전협정 이후 북한은 지속해서 국지전을 통해 남한을 위협하고 있고, 지금도 핵전쟁을 준비하며 한반도의 안전과 세계 평화를 저해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에서 북한 공산당의 피의 보복은 무신론 공산주의를 배격하는 한국교회에 가해졌다. 미국 교회의 원조와 선교 대상국이었던 한국 교회는 북한 공산당에게 미국의 스파이로 오인되었고, 전쟁 중 미군의 평양 공습과 폭격으로 인하여 미국에 대한 증오심은 곧바로 미국이 지원하는 한국교회로 전가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전쟁 중에 한국 교회의 피해는 매우 심각하였다. 공산군의 침공에도 피난하지 않고 교회를 지키던 성도들과 목회자들이 순교하였다.
한국성결교회의 경우, 약 110여 개의 교회가 파손되었으며, 목사 9명, 전도사 2명, 장로 5명을 포함해 160여 명이 순교를 당했다.
6·25전쟁 당시 단일 순교로서 가장 많은 피해를 당한 병촌성결교회의 경우, 성도 16세대 66명이 한꺼번에 쇠스랑과 삽과 몽둥이에 맞아 흙구덩이에 매장 당하였다.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유엔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불리해진 공산군들은 도주하면서 1950년 9월 27일부터 28일까지 병촌성결교회 직원 1명, 세례인 14명, 학습인 12명, 구도자 8명, 학생 및 유아 31명 등 66명을 처참하게 죽여 흙구덩이에 매장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처참한 상황에서도 정수일(여) 집사는 시부모와 3남 1녀의 자녀 그리고 시동생과 어린 조카 등 11명은 둘러앉아 기도와 찬송을 했으며 죽음 앞에서 “공산군은 패전하니 이제 회개하고 예수 믿어 구원받으라”고 끝까지 신앙을 지켰다고 한다.
한국대학생선교회의 김준곤 목사와 이만신 기성 총회장의 신앙의 어머니인 문준경 전도사는 1950년 10월 5일 새벽, ‘새끼를 많이 깐 씨암탉’이란 죄명으로 공산군에 의해 몽둥이와 총에 맞아 순교했다. 문준경 전도사는 본래 증도에서 공산당에 붙잡혔으나, “악질반동”으로 성분이 분류되어 목포로 이송 되었다.
그런데, 목포의 상황이 역전되어 공산군이 도주하는 사이 문 전도사는 자유의 몸이 되었으나, 증도에 두고 온 성도들과 고통을 함께 하겠다고 목포를 떠나 증도로 향했다.
증도에 도착하자마자 문 전도사는 체포 되었고, 인민재판에 회부되어, “예수쟁이들 중에 가장 죄질이 나쁜 반동 예수쟁이들을 낳는 우두머리”라는 죄명을 쓰고, 죽창과 다발총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고 한다.
죽기 전에 문 전도사는 공산군 군관에게 “젊은 여전도사를 죽이지 말고 석방하라, 함께 잡힌 성도들은 다 죄가 없으므로, 자기 자신이 전부 짊어지고 가니 석방하라, 그리고 자신을 죽이는 당신들도 예수님 믿고 구원을 받으라”는 3가지 당부를 하였다고 한다. 그 군관은 문 전도사를 죽이고 나서 그 부탁대로 여전도사와 성도들을 모두 석방해 주었다고 한다.
전 기성총회장 김용, 김용칠 형제를 배출한 정읍 두암교회에 10월 19일 공산 세력이 들이닥쳐 교회를 사수하던 윤임례 집사를 죽창과 둔기로 온 몸을 난자하였고, 윤 집사는 꿇어 엎드려 기도하는 모습으로 순교했다.
이 날 공산 세력은 윤임례 집사와 그 가족 등 두암교회 성도를 몰살시킬 계획으로 몽둥이와 식칼을 들고 몰려왔고, 결국 윤 집사와 아이들은 모두 순교하였으며, 교회와 성도들의 집 4채는 모두 불에 타 재가 되었다.
이날 학살로 윤임례 집사와 둘째 아들 김용채 집사, 며느리 조선환 집사 등 일가족이 학살되었으며, 정읍농업고등학교 학생회장이던 김용술 씨와 그의 가족 등 23명이 학살로 순교를 당했다.
같은 해 8월 3일 전 예성총회장 노태철, 노희석 형제를 배출한 한성성결교회에 공산군이 난입하여 교회를 지키고 있던 노형래 집사와 그의 가족들을 연행하였고, 그를 심문하는 내무서원에게 “예수를 믿어야 구원을 얻는다”라며 옥중 전도하는 노 집사를 대전 형무소로 이감하였으며, 그곳에서 노 집사는 불에 탄 채 순교하였다.
6.25 한국전쟁은 세계 냉전 체제의 이데올로기 갈등 구조가 한반도에서 폭발한 비극적인 역사로서 우리 한민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러나 그 상처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의 흔적으로 남아 전 세계 인류 평화의 도구로 승화되어야 할 것이다. 죽음을 넘어서 부활의 생명으로 나아가신 그리스도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 우리 성결교회도 선진들의 순교신앙 본받아 죽음의 물질만능 세속화를 극복하고 부활의 산소망을 회복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