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원 목사(양무리 교회)
질서없는 시끄러움은 때로는 사람을 힘들게 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가 없는 시끄러움은 사람을 짜증나게 할 수 있다. 자기의 목적달성을 위해 일으키는 시끄러움은 서로의 신뢰를 깨지게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시끄러움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힘들다는 이유들로 짜증날 수 있다는 이유들로 그리고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로 인해 시끄러움을 대하는 태도가 부정적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시끄러움은 성장과 성숙을 가져오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옛날 시골에서 초저녁이면 마을 어귀에 모여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기억이 난다. 한참을 놀다보면 어른들이 시끄럽게 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 잠을 자라고 야단을 칠 때가 있었다. 그때는 마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던 때이다.
비록 시끄럽다고 야단을 맞은 적은 있지만 시끄러움이 있는 마을은 어린 아이들이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 둘 도시로 이사를 가고 지금은 노인 몇 분이 마을을 지키며 농사를 짓고 계신다.
많던 집들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저녁이면 들녘에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쉽게 만날 수 없다. 그런 농촌에 저녁은 조용하다. 어른들이 나와서 시끄럽게 하지 말고 집에 들어가 자라고 야단 칠 일도 없다. 시끄러움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그러나 시끄러움으로 짜증나는 일이 문제이다. 시끄러움으로 서로의 신뢰가 깨질 수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하지만 모든 일에 문제가 있듯이 시끄러움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협력하고 배려하고 제도를 보완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끄러움은 살아있다는 증거이다. 개척교회일 때는 갓 결혼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예배시간에 아이들이 울거나 아이들로 예배를 방해받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교회가 성장하면서 갓 결혼한 부부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시끄러움의 문제가 발생했다. 갓 태어난 아이들이 부모의 품에 안기어 예배를 드리기 시작하면서 울음소리로 예배를 방해받는 일이 생겨났다. 그런 부모들이 많아지면서 유아실은 조용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