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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국 천주교회는 성장하는가?
왜 한국 천주교회는 성장하는가?
2014-09-26 오후 1:50:00    성결신문 기자   


한국 기독교계를 대변하는 일간지인 국민일보의 광고지면을 보면 어떤 날은 절반 이상이 전도에 관한 세미나와 훈련으로 도배되어 있는 날이 부지기수임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199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성장이 둔화되고 교회의 교인수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은 분명히 무엇인가 한국기독교회(개신교)의 기성교회들이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그 반면에 한국천주교회는 특별한 전도훈련과 프로그램을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나름 이유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근래 한국천주교회의 성장원인을 살펴보고 그 요인 속에서 한국기독교회의 거시적 지표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만 종교 사회학적 관점에서 방향성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천주교회는 1980년대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성장했다. 2013년 4월 발표된 '한국 천주교회 통계'에 따르면, 총 신자 수는 약 544만 명으로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0.4%를 차지한다. 사제 수도 꾸준한 증가세로 2013년 3995명으로 전년보다 2%포인트 늘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성장세다. 30년 전 천주교인 수는 171만 명이었다. 10년마다 125만 명씩 늘어난 셈이다.

2006년 11월 개신교 목회사회학연구소 주최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톨릭의 성장> 포럼 발제문인 “카톨릭 신자의 괄목할 만한 증가와 그 요인” 참조해 보면 한국천주교회의 성장원인을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있다.
1) 오랜 전통으로 내려오는 전례 의식과 문화, 예술 등에서 느껴지는 엄숙함
2) 개인의 성찰을 강조하고, 억지로 강요하지 않는 자유로움
3) 독신으로 봉헌된 삶을 사는 사제, 수도자의 상징성과 이들에 대한 신뢰
4) 체계를 갖춘 조직성과 전체가 하나의 교회라는 일치성, 이를 통한 재정투명성
5) 사회복지 활동 등 세상 낮은 곳을 돌보며 섬기는 모습
6) 인권, 사회정의 활동 등을 통해 세상을 일깨우고 바른 길을 제시하는 모습
7) 타종교와 한국 문화전통에 포용적인 태도

한마디로 요약해보면 ‘종교다움’의 이미지를 잘 구축하고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다른 종교(개신교)의 종교답지 않은 모습으로 인해 더 대비된 측면도 크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즉 한국사회 내에서 개신교 교회의 모습과 교인들에 실망한 사람들이 반대 급부적으로 발걸음을 천주교로 돌렸다는 이야기이다.

구체적으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듯이 개신교의 신뢰도는 한국의 3대 종교 중 가장 낮다. 2013년 2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의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카톨릭(29.2%), 불교(28.0%), 개신교(21.3%) 순이었다. 두 달 뒤 고산문화재단이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한국인의 종교 인식과 불교의 인상' 설문 조사 결과, 개신교(21.6%)의 신뢰도는 카톨릭(31.7%)과 불교(31.6%)에 미치지 못했다. 개신교를 신뢰하지 않는 이유로 기독교인들은 언행일치가 안 되고, 교회 내 비리·부정부패가 많고, 타 종교에 비판적·배타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성장의 이유는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의 조세희의 석사논문 '합리적 선택론에서 본 한국 개신교와 카톨릭의 교세변화:1995-2005'에서 카톨릭의 '관대함'이 성장비결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연구에서 기독교국가로 인식되고 있는 미국교회 내에서 메가처치로 성장의 요인은 ‘엄격함’(보수주의적이며 복음주의적이고 열정주의적인 요소로 대변됨)이 교회성장의 원동력이고, 반대로 상대주의, 다원성, 다이얼로그로 특징지어지는 '관대함'은 교회성장에 도움이 안된다는 연구결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2008년에 성균관대 서베이리서치센터가 사회과학연구원 자료용으로 조사한 자료를 분석해 1,508명의 표본을 추출한 다음 집중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는 미국과는 달리 '관대함'이 종교 성장에 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분석됐다고 설명했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비종교인의 인구비율이 높고 주류 종교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잠재적 신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기존 신자들에게 만족을 주는 '관대한 교회'가 성장하는 반면, 잠재적 신자들에게 반감을 주고 기존 신자들에게 불만족을 주는 '엄격한 교회'는 쇠퇴한다"라는 가설을 세울 수 있다 라고 주장했다.

또 "한국의 카톨릭 신자는 신앙생활이 느슨하고 외부세계에 비 배타적인 '관대한 교회'의 특징을 갖는 반면, 개신교 신자는 신앙생활에 매우 분주하고 외부세계에 배타적인 '엄격한 교회'의 특징을 보인다"는 분석결과들도 언급하면서 결과적으로 "이런 관대함이 카톨릭 교회의 성장을 도운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상과 같이 학문적 연구 결과물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는 바도 크지만 피부로 느끼는 개신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냉소적인 것과는 달리 한국천주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온도차가 있는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김수환 효과’라 할 수 있다.

한국 천주교는 1960년대 이후 쪾복음화 쪾토착화 쪾참여와 나눔 쪾종교적 투신 등 4가지 분야에서 타종교와 차별화 됐다. 특별히 1970, 80년대 개신교는 보수적 색채가 짙은 교단들 가운데 많은 목회자들이 반공 이데올로기적인 모습의 어용세력으로 정권의 비호와 암묵적 지원 아래 교회성장을 이룬 측면이 있었던 반면에 한국천주교회는 정권민주화운동 등에서 단연 돋보이는 역할을 했다. 1980년대 명동성당은 민주화운동의 성지가 됐고, 김 추기경은 그 중심 이었다. 제3공화국의 유신정권하에선 특히 현실정치에 좌절한 지식인들이 김수환 추기경의 발언을 듣고 천주교에 귀의하는 경우가 많았다.

1983년 171만명 수준이던 천주교 신자는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1992년에 300만, 2000년에 400만, 2008년에 500만을 넘어섰다. 물론 숫자의 결과만 갖고 올바른 성장이라고 다 논할 수는 없지만 가시적으로 그 영향력과 사회의 신뢰도가 부메랑처럼 돌아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8월의 광화문 시복식행사와 교황의 한국방문 이후 지금 종교계의 관심은 과연 ‘프란치스코 효과’가 어느 정도일까 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침체기’에 빠졌던 세계 가톨릭의 위상을 새롭게 정립한 교황으로 평가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청 재정을 개혁하고 마피아를 파문하는 한편, 신자유주의의 무자비함과 비도덕성을 질타하고 있다.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권위주의를 깨면서 소탈하고 파격적인 언행으로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평화를 강조해 온 월드스타로 부상 했을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꼽히고 있다.

그 반면에 한국기독교회는 어떠한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 한국사 학과의 도날드 베이커 교수는 1985년, 이때가 한국 개신교의 절정기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내리막길이 시작되었고 한국기독교회에 먹구름이 낄 조짐들이 나타났으며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는 신뢰와 윤리 측면에서 돌이킬 수 없는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몇몇 대형 교회 목사가 재정 비리와 편법적 세습과, 논문표절을 통해 한국교회의 위상을 떨어뜨렸다.

또한 교계 연합 기구의 문제점도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기총은 금권 선거로 이미지가 실추됐고, 이미 한교연이라는 단체가 만들어짐으로 해서 한국교회를 대표할 수 있는 목소리를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으며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한국교회협의회의 영향력은 감소했다고 할 수 있다.

  ‘욕먹는 기독교, 평신도의 고민’이라는 칼럼을 쓴 이병주변호사의 말을 빌리면 오늘날 한국기독교의 문제는 「사(私)와 공(公)과 초월(超越)」의 혼동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는 삶 속에서 동시에 세 가지 얼굴(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생활인(직업인), 시민(공민), 그리고 신앙인(종교인 또는 비종교인)으로서. ‘생활인’의 정체성은 나와 가족의 생활을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인생의 사적(私的) 영역을, ‘시민’의 정체성은 사회 속에서 이웃과 다투고 협력하며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인생의 공적(公的) 영역을, 그리고 ‘신앙인’의 정체성은 삶과 죽음의 한계를 보면서 그 너머의 초월적이고 영원한 것을 고민하는 인생의 초월적(超越的)이고 영적(靈的)인 영역을 의미한다.

기독교인의 삶에도 마찬가지로 먹고 사는 일을 하는 사적인 영역과 시민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활동에 참여하는 공적 영역,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는 초월적 신앙적 영역이 들어 있다. 성도의 삶에도 사와 공과 초월의 세 가지 요소가 있다는 것은 성경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12:29~31)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Love the Lord your God.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이 말씀 속에는 기독교인의 사랑의 대상이 세 가지 들어있다. ‘하나님 사랑(God)’과 ‘이웃 사랑(neighbor)’과 ‘자기 사랑(yourself)’이다. 여기에서 자기 사랑은 인생의 사적 측면에, 이웃 사랑은 인생의 공적 측면에, 하나님 사랑은 인생의 초월적 측면에 각각 해당된다.

그런데 이렇게 혼동을 가져온 원인은 사와 공과 초월이 각각의 영역 속에서 잘 자리잡고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데 사와 공과 초월이 서로의 이해관계와 정치적 신념, 교육적 가치, 신앙적 가치관에 따라 통일성을 이루지 못하고 뒤죽박죽되어 올바른 하나의 가치관을 표출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어떤 사건과 문제에 대하여 일관성이 결여되어 일목요연하지 못하고 그때 그때마다 다른 결과물들이 나옴으로 인해서 변명에 급급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의 개신교는 ‘개독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되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옆에 오는 차를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死角地帶), 기독교인들이 스스로의 문제점을 보지 못하는 블라인드 사이드(blind side)가 있다. 한국기독교회의 블라인드 사이드는 「한국교회 및 기독교인들의 신앙이 ‘사(私)’에 치우쳐서, ‘공’적 감수성을 상실하고, 신앙의 ‘초월’적인 면을 왜곡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이기적인 기독교, 사생활에만 집중하는 기독교, 정치적으로 편파적인 기독교, 공감능력이 약한 ‘긍휼이 없는 기독교’의 양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독교회에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들, 특히 기복신앙과 물량주의(교회성장은 곧 건축으로 연결짓는), 개교회주의와 기성 정치권력에 편승한 교권주의와 명예욕에 사로잡힌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 교회의 정치참여 문제, 또 교회의 불균형인 미자립교회 문제 등, 여기에는 우리 모두가 책임이 있다.

이병주 변호사는 결론 짓기를 욕먹는 문제를 야기한 목회자나 장로님이나 교회들도 문제가 있지만, 더 나아가 평신도들은 자본주의적 소비자 신앙의 행태를 벗어나야 하며 수많은 교회 중 맛있는 교회를 상품처럼 골라 설교와 신앙 서비스를 소비하며 사생활(私生活)에만 적용하는 소비적 신앙생활, 자기사랑의 응답에만 매달리는 사(私)적 신앙생활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제 앞으로의 한국기독교회의 앞날은 계속적으로 명암이 교차할 듯 싶다. 그 이유는 산재한 많은 문제들이 걸러지고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교회들 스스로 자정작용을 통해 거듭나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 나아가 한국천주교회의 성장의 두 축이 ‘종교다움’과 ‘관대함’이라는 관점을 놓고 해석해 볼 때 한국기독교회(개신교) 역시도 본질적으로 ‘교회다움’(영성회복)과 ‘관대함’(포용성)을 통해 독선에 사로 잡히지 말고 좀더 세상에 한발 더 다가가야 할 것이다.

한국천주교회의 수장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이 추기경으로 서임된 때가 1969년 3월 28일, 그의 나이 47세 였다. 한사람의 신앙과 인격도 중요하지만 그를 인정하고 세워주고 따른 한국 천주교인들이 그를 ‘성자다움’으로 이끌었고 시대의 사표로서 존경받았던 것처럼, 한국기독교회 내에서와 교단 안에서도 이와 같은 인물을 키워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아울러서 특별히 보수교단들에서 금기시 되는 문제들, 짧은 소견이지만 제사문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와 주초문제, 성적소수자들과 성매매 여성들에 대해서 무조건 죄악으로 치부해 버리기 보다는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구성원으로서 그리고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원의 대상임을 인식하고 아픔을 함께 고민하며 이런 아젠다에 대해 교회가 ‘은혜’차원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 편집위원 송용현 목사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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