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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이후 그리스도인의 라이프
부활 이후 그리스도인의 라이프
2016-03-26 오후 3:08:00    성결신문 기자   


부활은 그 자체로 끝이 아니다. 부활의 경험은 나가서 전할 수 있는 능력이고 사명이다.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사명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그 사명을 오늘의 시대에서 구체화하는 라이프는 무엇인가? 이 글은 그 해답을 찾으려는 작은 시도이다.

오늘의 소비시대
우리는 소비주의 시대의 정점에 와 있다. 소비시대는 구매와 소비가 성스러움을 경험한 매개체가 된다. 쇼핑몰은 소비의 전당이 된다. 사람들의 마음은 더 이상 초월적이고 인격이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보좌가 아니고, 더 이상 삼위일체를 본받아 다른 이들을 알아가고 사랑하지 않는다. 부의 약속에 닻을 내리고 심지어 그 사슬에 묶일 때까지 우리의 마음은 불안한 시대를 만들어 가고 있다. 더 많이 가지려는 갈망은 고립된 개인주의의 강력한 힘과 결합하여 사람들의 연대의식을 약화시킨다. 

자본주의적 자유의 가르침은 개인의 선택을 한없이 칭송하는 사회에서 돈을 벌고 쓰는 이른 바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닌다. 하지만 그로 인해 사회는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 예수님의 시대나 오늘의 시대의 강력한 우상은 맘몬이다. 오늘 날에는 소비문화의 형태로 숭배를 받고 있다. 슬프게도 우리는 순교하라는 말보다 덜 벌고 덜 사라는 말을 하기가 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고자한다면 소비문화와의 일전을 불사해야 하고, 그 싸움에 나서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소비시대에서 부활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라이프를 추구해 나가야 할까?

부활 이후
필자는 그 해답을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보여주신 행적을 통하여 찾고자 한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 그 40일 동안 무엇을 하셨을까? 성경은 부활의 주님이 승천하시기까지 여인과 제자, 그리고 믿는 형제들에게 모두 10번 나타나 보이셨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나타나 보이신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필자는 그 이유를 부활을 믿게 하셔서 십자가와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시고 세계선교의 사명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본다. 

막달라 마리아, 여인들, 베드로, 두 제자, 열 제자, 도마, 일곱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열한 제자 등의 순으로 나타나 보이셨는데 각각 영적인 의미가 담겨있다고 짐작된다. 특히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심은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었던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에게 나타나심은 자신의 잘못을 통곡하며 회개하는 제자에게 믿음과 확신을 심어주셨다. 주께서 부활절이 지난 다음 주일에 직접 만져보지 않고선 못 믿겠다고 고집하던 도마에게 나타나신 것은 도마의 불신앙을 깨뜨려 주시기 위함이다. 주께서 오백 여 형제들에게 나타나심은 오백 여 형제 곧 당시 세상에 있던 모든 믿는 사람들과의 그 만남을 통해 예수님은 교회들에게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한다. 
열한 제자들에게 나타나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는 선교 대위임령을 주셨다. 지금까지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의 부활 이후 행적에 담긴 의미는 많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증인으로 선택, 회복, 사명, 파송 등 일련의 단계와 수순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제자들은 40일 동안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 그의 음성을 들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었다. 지금 이곳에, 살과 피로, 몸과 영혼으로 나타난 부활에 대하여 자세히 알고 그 내용과 함의를 철저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예수님과 함께 하는 하루하루가 절실히 필요했다. 죽음 너머의 생명을 약속하는 부활만이 아니라 지금 존재하는 부활을 알아야 했다. 그 40일 동안에 예수님의 부활은 가족과 이웃과 함께, 거리에서든 집에서든 살아내야 하는 라이프로, 예수님의 제자인 그들이 추구할 단순한 라이프를 보여 주셨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일터에서든 정치 현장에서든 인간성 상실의 현장에서든, 신앙생활 가운데서든 부활로 살아내야 하는 라이프였다. 그 라이프는 오늘의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을 통하여 어떤 삶을 담아낼 수 있을까? 

단순한 라이프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영성적 측면에서 대안적 삶의 스타일은 단순성이다. 단순성으로 이루어지는 라이프는 예수께서 몸소 실천하신 삶이었다. 이는 그의 제자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으로 말씀하신 부분이다. 그분의 산상수훈은 제자들에게 단순한 삶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에 관한 당위성은 “너희는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로 요약된다. 

예수께서는 놀랍도록 단순한 삶을 사셨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성 특히 심플라이프를 빼면 생각할 수 없다고 본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오랜 전통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여 왔던 단순한 라이프의 특징은 무엇인가? 

프랑소와 페날롱(Francois Fenelon)은 단순성을 그리스도인의 영적 삶을 위하여 매우 높게 평가한다. 그는 이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첩경이요 불필요한 행위를 버리게 되는 기준이 된다고 말한다. 계속하여 그는 단순성이란 불필요하게 자아와 자아의 행위를 향하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와 같은 행위는 지나치게 서두르지도 않는 반면에 지나치게 평온한 것도 아니다. 

“앞으로 나아갈 때 바로 앞에 놓인 일들을 보면서도 내딛는 발걸음에 대한 사색을 잃지 않으며, 지나온 일들을 언제나 깊이 생각하는 영혼의 자유, 그것이 곧 참된 단순성”이라고 그는 말한다. 단순한 라이프에 대하여 현대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게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와 리차드 포스터(Richard Foster)가 구체적인 시도를 하였다. 윌라드는 그의 책, 『영성훈련』(The Spirit of Disciplines)에서 단순한 라이프를 인간의 복지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배제하고 최소한의 일관된 목적으로만 삶을 정돈하여 사는 삶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가난과 더불어 이와 같은 단순함을 검약의 풍부한 표현이라고 말한다. 

포스터는 그의 책, 『영적성장과 훈련』(Celebration of Discipline: The Path to Spiritual Growth)에서 단순한 라이프를 “외적인 삶의 스타일로 나타나는 내적인 실재”라고 하여 내적인 초점과 연합에서 시작된다고 지적한다. 그에게 내적인 실재의 경험은 바로 외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그는 소비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삶의 문제점을 내적인 실재의 경험부족과 외적인 단순한 삶의 스타일의 결여에서 찾고 있다. 그에게 내적인 경험은 거룩한 중심에서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흔히 말하는 기독교 영성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러한 경험 부족은 필경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치 못한 물질에로 집착하게 만든다. 이미 외부적 물질세계는 부패할 대로 부패한 만큼 그와 같은 병적 현상에 집착하면 할수록 소비시대 현대인의 삶의 병리적 현상은 더 심화되어 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단순한 삶은 오늘의 부활 이후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소비병이 깊어진 사회를 치료하는 가장 적합한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실천하는 삶에 나열되는 선물들은 열거하기 어려울 만큼 소중한 것들이 많다. 특히 서두르지 않는 평화, 능력의 삶을 누리게 된다. 따라서 필자는 부활 이후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심플라이프, 단순성을 지향하는 삶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선교적 라이프
단순한 라이프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 이후 그리스도인들에게 보여주시고 명령하신 것은 선교적 라이프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존재 이유이자 삶의 즐거움이요 삶의 물줄기이다. 그런데 이는 기원 후, 313년 콘스탄틴 황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국가의 유일한 종교로 공인한 후, 무려 1,500여 년간 서구인들의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 커다란 영향으로 나타난 것과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선교적 라이프는 선교사를 많이 배출하거나 선교행사를 많이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선교를 여러 프로그램 중의 하나로 다루면서 교인들 중의 특정인들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유형을 이루는 교회생활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을 관통하는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선교적 라이프였으며, 그들의 증언은 순교적이었다. 또한 죽음 마져도 너머 복음 없이 살아가는 저 건너편의 사람들을 불사하였다. 그들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면서 선교적 라이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인 주님의 교회를 세우려 하였다. 이러한 초대교회의 모습은 서구사회가 메가트랜드로 기독교 세계를 유지하면서 퇴색하여 오다가 소비시대에 이르러서 더 심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도 급격한 변화와 함께 한국교회의 쇠퇴는 점차 빨라지고 있다. 

이제 선교와 선교적 라이프는 여러 개 중의 하나로 전락하거나 없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파도에서 모색된 것은 서구 사회가 후기 현대사회로 인해 크게 세속화된 사실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희망이 소멸되는 어려움을 겪으면서 시작된 것이 선교적 교회이다. 이는 선교를 효과적으로 진행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기 보다는 교회가 본질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곧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가 ‘선교적’을 ‘생각과 행동과 삶의 방식이 선교 지향적인 것’으로 요약하여 정의한 것 처럼 ‘선교적 라이프’라는 말은 어떤 곳에 소속이나 어떤 행위가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삶의 방식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하나님 나라의 선교와 연결하여 바라보고 적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특정한 사람만 선교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보내는 자가 아니고, 보냄을 받은 자로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 처럼, 이제는 하나님의 지상명령인 선교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보내진 자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라이프다. 그러면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의 삶에서 선교에 참여한 사람들이 모여 예배하고 간증으로 가득한 교회를 세워가게 된다. 그곳에 수동적인 그리스도인도 없고, 교회의 쇠퇴도 없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직분과 남녀노소의 여부를 불문하고 자신의 주어진 삶의 환경에서 보냄을 받은 자로서 라이프를 구현하게 된다. 이러한 부활 이후 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나타났던 삶이 서구교회와 초기 한국교회의 모습에서 오랜 세월 동안 사라져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쉬지 않고 그분의 선교를 쉬지 않고 진행하고 계신다. 또한 주님은 언제나 그분의 선교에 동참할 신실한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2016년 부활절을 보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써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묻고 그 해답을 찾아보자. ‘나는 보내는 자가 아닌 보냄을 받은 자이다.’ 이제라도 단순한 라이프와 선교적 라이프로 돌이키는 것, 그것은 너무 일찍 쇠퇴로 돌아선 한국교회가 가질 희망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망이다. 

구성모 목사(본지 편집위원)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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