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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축도’에 관하여
‘목사의 축도’에 관하여
2010-07-02 오후 11:34:00    성결신문 기자   


장관수 목사(예은교회)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 데카르트는 ‘내가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했다. ‘생각’ ‘생각해 본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목사안수 받은 후 몇십년간 ‘축도’란 ‘축복기도의 준말’이라 여겨, ‘축(복기)도’로 표기하고, 마무리는 ‘축원합니다.’라고 하여왔다.

1993년 1학기부터 몇 년 간 현신애 권사님의 헌납으로 세워진 북한선교신학원의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통합측 장로신문의 편집국장장로님과 알게된 후 여러 번 글을 기고도, 감사하다는 선물을 받기도, ‘지어다’와 ‘축원합니다.’의 논쟁기사를 보기도 한 같지만 관심가지고 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런데 2009년도이던가 총회회의에 축도에 관한 건이 제기된 후 관심이 생겨,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다. 비로소 축도문제는 개신교만이 아니라 가톨릭, 일반인들까지 가세하고 있는  복잡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고, 연구해 보기로 하였다. 또한 인터넷에서 축도를 목사의 특권인양 여긴다는 일반인들까지 가세한 비판도 생각나면서 객관적인 정당성이 인정될 연구방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연구해야하는가? 상당기간동안 묵상하면서 기도하는 중에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연구하였다.

첫째로 축도문제는 계시적 지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식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실험으로 증명되어야하는 과학적 지식과 논리적으로 증명되어야하는 이론적 지식과 계시적 지식이다. 그런데 축도에 관한 것은 계시적 지식인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두번째로 신구약성경을 하나의 맥락(context)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구약은 유대교의 경전이지만, 신약계시록 10장 4절에서 시작되는 코란(제1장 ‘알파티아’)을 경전으로 하는 이슬람의 뿌리요, 신약과 더불어 기독교의 경전이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의 두 가지 공통점은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 신앙의 대상 아브라함이 섬겼던 하나님이다. 따라서 구약은 세계3대유일신 종교의 같은 뿌리이기 때문에 신약과 하나의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번째로 축도란 히브리어 동사 바라크()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축도와 관련된 ‘바라크’라는 동사는 주어가 누구냐에 따라 하나님은 ‘복을 주셨고’(창1:28),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했으며’(창27:27-), 사울은 사무엘에게 ‘문안하였고’(삼상13:10),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다.’(욥1:11)라고 하는 등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네번째는 축도의 원형인 민수기 6:24-26절의 제사장 축도연구가 중요했다.
왜냐하면 통합측 장로교의 제75회 총회 시에 오랜 논란과 토의 끝에 목사의 축도 ‘있을 지어다’를 ‘축원합니다.’ 로 결정한 이유가 첫째는 ‘축도’도 기도이기 때문이요, 둘째 이유는 나이 많은 몇몇 장로들이 젊은 목사가 ‘...지어다’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제기에서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연 축도는 상향적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인가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제사장의 축도문 연구가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민수기 6장에 등장하는 제사장의 축도는 문법적으로 독특했다. 히브리어는 2인칭에 대한 명령 외에, 1인칭 화자의 의지(Let me..., or I will...)를 강조하는 표현법 ‘’코홀터티브(Cohortative)라는 것이 있는가 하면, 3인칭에 대한 명령인 ‘저씨브’(Jussives)라는 것(Let him...)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축도이전 문장 23절에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제사장들의 축도문(민6:24-26)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보호, 은혜, 평강을 주시도록 하는 3인칭명령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또한 축도문 이후의 27절은 제사장들이 이처럼 내 이름으로 선언하면() 이라고 하여 ‘선언하라는 것’이었으며, 축도문 후의 마무리 27절에서는 선언적으로 축도하면 1인칭을 두 번 반복하여 ‘내가 내가 복을 주겠다’()라고 강조하신 것이었다. 즉 축도란 상향적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하는 약속된 복의 선언이었다.

끝으로 신약 바울의 축도(고후13:13)도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맥락에서 되어진 것이라는 것이었다.

축도내용도 동물에게는(창1:22) ‘생육’의 복을, 인간에게는 ‘정복과 다스림’(창1:28), 구약백성들에게는 ‘보호, 은혜, 평강’(민6:24-26), 신약의 백성들에게는 영혼구원과 관련된 3위(3 persons) 하나님의 ‘은혜, 사랑, 교제’의 복이 일관된 맥락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연구의 결과, 축도는 일반축복기도와 같이 위로 올려드리는 상향의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선언하되, 예수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교제’는 비인격체이므로 ‘있을지어다.’가 맞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송구한 마음의 ‘계실지어다.’나 나이 많은 이들의 청중에 대한 배려차원에서 ‘축원합니다.’도 가능하다는 것과 3위 하나님은 빠질 수 없는 핵심이라는 것이었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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