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열 목사(목포휘광교회)
목회자의 망중한 곧 월요일 나는 상념의 이불 속에서 천사만려의 공간을 여행 중 성결신문사로부터 칼럼을 부탁받으며 시골 목사로 극구 사양했으나 강청하심과 또 한편 이토록 오지에까지 관심두신 성결신문사의 탕평출판시책임을 알고 수용했으나 워낙 우둔한 자라 좌충우돌 설왕설래 하다 보니 섬광처럼 왜 영적시대 정신처럼 강력하게 떠오름이 있었다. 그건 다름아니라 모든 것이 유물론적사관에 척도로 재단하고 생각되는 세상에 말없는 다수가 피곤함과 무력감에 젖어있음에서 자존감, 자긍심의 회복같은 것이다(감히).
역사학자들은 오늘의 이 시대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라 하지 않는가? 그 특징은 다양성, 다극화, 다원화 시대로 천태만상의 사람들이 어울리고 화합해 최상 최고의 조합을 이루어 공동성을 추구하는 시대라는 말일 것이다. 고로 어느 유능한 한 사람이 God Complex에 의해 독주 독식하는 개인주의나 전제군주식으로는 존재자체가 불가능함을 말할것이리라. 상응. 상생. 상존에 무게를 두고 소속원 전체가 중시되며 보편적 관심이 되어야 하는 역사의 트랜드를 읽어야 할 것이다.
고로 목회지가 서울이든 강원도건 절해고도이건 지리적 장소나 상태가 문제가 아니라 어디에 있든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색깔과 모양의 꽃을 영양실조상태가 아닌 풍성함으로 피워내느냐가 문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꽃은 천상천하의 독창적 창조물 나에게도 나만이 피워낼 수 있는 그 향기 그 상태이리라. 그래서 난 山不在高 有仙則名 水不在深 有龍則靈 "산은 높지 않아도 신선이 살면 유명하고, 물이 깊지 않아도 용이 살면 영험하다"라고 자존감을 자극해 보지만 공허해짐이랴.
존경하며 경외스러운 성결의 기수들이여! 지금 당신들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중대사역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비록 육신의 삶은 조반여석의 상황이라도 순결하고 단아한 꽃을 피우고 있음에 자존감 갖자. 대형주의, 거대주의, 물신주의가 판치는 바벨귀신이 득세하지만 순결하고 청초한 내 심장으로 피워낸 꽃에 천리향을 감격하며 행복해하자. 어느 누가 감히 꺼져가는 등불 들고 무명초 같은 성도 이름을 되내어 가며 산길, 밤길, 둑길을 걸어가는 영성을 선물 받을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선민만이 누리는 주님의 특혜가 아닌가? 난 거대한 하늘 관심에 희소가치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천변만화의 세상과 상관없이 불변의 정체성으로 나를 압도하는 산이여!! 세상의 잡다한 오물까지 네 품에 던지면 조화의 일부로 만들어 만물을 품에 안고 침묵하고 있는 산이여!!
산 앞에 서면 나의 적음과 산 앞에 서면 나의 초라함, 산 앞에 서면 나의 찰라를 본다. 피곤하십니까? 일어나 산을 보십시오. 난 결코 잉여인간이나 무의미한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정확무오한 섭리 중 일원이며 장식품이나 불요불급한 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절대필요한자임을 산은 말하지 않는가?
눈을 들어 산을 보라. 현대판 호렙산에서 기진맥진한 너에게 현대판 엘리야임을 말씀하신다. “일어나 산을 보아라” “일어나 산을 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