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록 목사 [새 문교회]
긴긴 여름 사역을 마치고 가을바람이 차가와지고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교회와 목회자들은 왠지 조급해 지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1년의 목회와 신앙생활에 대한 결산을 해야 하고 성탄절과 연말이 다가기 전에 새 해의 목회 계획의 큰 틀이라도 만들고 발표해야하는 목회적 신앙적 부담 때문일 것이다.
이번 특집에서는 매 번 반복되는 추수 감사절의 의미와 유래 그리고 프로그램에 대한 반복적인 나열보다는 추수감사절 예배의 본질에 대하여 살펴 본 후 디아코니아적 목회를 통한 이웃 사랑의 실천으로 영적성숙을 이루고, 영혼을 추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영적인 감사절이 되고자 한다.
‘추수감사절’이 성경적 근거나 신학적 점검도 되지 않은 전통과 관습에 따라 특정한 나라의 추수감사절을 지나치게 부각시켜 연례적인 행사를 위한 프로그람 속에 묻혀버려서는 안 된다.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영혼의 추수를 위한 영적인 축제의 절기가 절실하다. 교회를 잘못된 관습이나 전통에 따라 행사를 위한 프로그램 위에 세우지 말고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말씀 위에, 믿음 위에 세워야한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신학적인 빈곤으로부터 온다.
교회론의 부재 속에 대형교회 후임자가 된 일부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면 교회 체질과 다른 검증도 안 된 새롭고 다양한 프로그램의 옷을 빌려다 맞지도 않는 옷을 억지로 성도들에게 입힌다. 결국 목회자 자신도 프로그램 증후군으로 탈진하고 양들은 푸른 풀밭 쉴만한 물가가 아닌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교회도 혼란에 빠지는 것을 종종 목격한다.
교회가 행사도 프로그램도 다 접어치우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인 목회의 방편과 은사로 삼아야할 것이다. 현대 목회를 Pastoral Ministry로 정의할 수 있다. 목회는 영적 디자인이기도 하다.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교회론과 목회신학의 정립이 없이 오직 프로그램에 몰두하며 목회를 자기 주관이 옳다고 고집을 부리거나 다른 교회와 목회자들의 흉내를 내며 앞으로만 돌진한다면 교회의 본질을 행사나 비성경적인 프로그램으로 대처하려고 하는 유혹에 빠지기 때문에 안 된다는 말이다. 결국에는 교회를 비성서적이고 비신학적인 모습으로 은연중에 몰고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양들은 엄청난 풀을 먹는데도 병들어가게 될 것이다.
추수감사절뿐만 아니라 성탄절의 행사들 중에도 지나칠 정도로 영적인 충족보다는 사람들의 눈과 귀에 즐거움에 포커스를 맞춘 성경적 근거도 없고 왜곡된 역사적 관습을 그대로 되풀이 하는 세속적인 교회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추수 감사절을 지켜야 할 것인가? 세 가지만 제언하고 싶다.
첫째로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회복하는 추수감사절이 되게 하자!
우선적으로 사람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하는 나를 위한 추수감사절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추수감사절로 회복하자!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여 헌신을 드리자! 예배의 회복을 통하여 영혼 깊은 곳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감사가 있는 예배를 드리도록 예배와 감사, 감사와 예배를 다시 한 번 더 가르치자! 온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함께 드리는 예배가 되게 하자! 단순한 참관자가 아닌 인도자와 성도들이 예배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음성을 듣고 응답하며 하나님을 만나고 예배 안에서 영적인 교제를 나누게 해야 한다.
중세 교회 타락의 원인 중 하나인 ‘성직자 주의’를 극복하자. 중세교회의 교회론은 교황론이나 마찬가지이다. 성직자라는 이름하에 교황이나 신부가 예배를 독점하고 평신도와 차별화를 통하여 평신도를 홀대하며 성직자 권위를 옹호하기 위하여 예배를 독점하고 더 이상 예배 자가 아닌 참관자로 관람자로 전락 시켰다. 종교개혁 이후에 오늘 날에도 목회자의 권위를 다시 강화하면서 예배에 있어서 평신도는 영화관의 관람자로 구경꾼으로 만들어 다양하고 특별한 은사를 받은 성도들을 하나님 나라의 모델로 세워 봉사하게 하기보다는 무능한 평신도로 묶어 두고는 목회자 혼자 예배를 점점 독점하면서 권위주의에 빠져가면서도 성도들에게 예배 자가 되라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목회자는 영적인 예배를 디자인할 은사를 하나님께서 넘치도록 허락하셨다. 교회의 상황과 형편에 따라 모든 성도가 연령층에 상관없이 예배자들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며 지혜를 구하자. 이것은 각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의 몫이다.
둘째로 디아코니아로 이웃과 함께 하는 섬김의 열매를 드리자!
디아코니아적 측면에서 보면 한국교회는 선교 130여 년을 넘긴 노년의 원숙한 교회여야 하지만 아직도 한국교회 초기 선교사들의 아가페 사랑인 이타적 사랑을 실천했던 디아코니아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것 같다. 이는 디아코노스(섬기는 자)로 오신 예수님 앞에서 부끄럽고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은혜로 엄청난 성장했으면서도 그 영광을 하나님께 제대로 못 드리고 여전히 대형화와 물량주의 그리고 교회 이기주의에 빠져 자기 배를 채우려는 경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아닌 자기 교회만을 위한 영적 이기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는데 선교지인 사회와 세상을 섬기지 못하며 오히려 정죄하기 까지 한다. 혹 선교와 디아코니아를 이용하여 부흥의 성과를 이룬 교회들 가운데도 선교와 디아코니아를 교회부흥의 방법이나 도구로 사용하는 수준이다. 이제 한국교회는 디아코니아가 수단과 방법과 목적을 뛰어넘어야 한다. 예수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으로서의 순수한 아가페 사랑의 표현이어야 하고, 그 자체이어야 하고, 본질이어야 한다. 이런 진정한 소금과 빛 된 아가페 사랑에는 세상도 감동할 것이며 교회공동체 안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런 교회가 된다면 교회를 향하여 들고 있던 돌들을 내려놓고 박수를 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섬기는 분으로’ ‘디아코노스’로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오게 하셨고 이를 위하여 피 값으로 교회를 세우시지 않았는가?
더 이상 추수감사절이 교회 안에 갇혀서 우리들만의 먹고 마시는 잔치가 되게 하지 말고 예배와 감사의 영적인 동력을 온 세상과 함께하는 디아코니아를 확산하는 계기가 되어 세상으로 흩어지는 교회, 선교적인 교회, 디아코니아적인 교회가 되게 하자.!
세계적으로 교회성장과 교회의 대형화를 추구하는 요즘, 워싱턴 D,C 빈민가 애덤스 모르간에 자리 잡고 있는 세이비어 교회(The Church of the Savior)는 전교인이 150여 명 정도의 작은 교회가 220억 원의 교회재정 결산을 통하여 200여개의 디아코니아 기관을 운영하고 있기에 거대한 미국을 움직이는 영향력 있는 10대 교회에 해마다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교회가 행하는 사역의 핵심은 1) 영적인 삶을 통해서 주님을 닮아가는 삶을 추구하고, 2) 주님이 보여주신 긍휼의 마음으로 지역사회를 섬기며, 3) 주님이 섬기셨던 가난한 자, 버림받은 자, 소외받는 자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하며, 4) 용기와 희생적인 삶을 통해 세상을 변화시키는데 헌신하는 것이다.
이 작은 거룩한 공동체의 디아코니아 사역에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시고 사람과 사회와 교회들을 참여시켜 네트워크가 형성되기에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추수하여 하나님께 드리자!
참된 예배를 회복하고 이웃 사랑을 실천한다면 반드시 열매는 맺힌다. 일 년 동안 기도하며 복음을 전하였던 사람들을 초청한다면 가장 영적인 추수감사의 열매가 될 것이다. 복음으로 영혼을 추수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열매보다 더 큰 추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감사가 있는 예배를 통하여 우리들의 감사의 영성을 회복하고, 인간애나 우리의 의지가 아닌 아가페 사랑의 꽃인 디아코니아를 통하여 이웃을 섬길 때에 하나님께서 감동하시면 얼마든지 많은 영혼의 추수가 가능할 것이다. 우리가 즐겁고 유익한 일이 아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일하신다.
팔당 댐 아래를 지나는데 ‘추수감사교회’ 라는 교회를 안내하는 간판을 보았다. 감사 교회라는 말에서도 감동을 받았는데 추수감사교회라는 이 교회의 이름 자체가 은혜가 되어 본인이 가끔씩 영적인 추수감사를 묵상하는 키워드가 되고 있다.
영혼의 추수를 위하여 목회자와 성도들이 늘 추수감사교회가 되었으면 한다. 추수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교회가 아닌 교회의 존재 목적인 영혼을 구원하는 선교적 도구로서 추수감사교회가 된다면 주님도 크게 기뻐하실 것이다. 날마다 영혼을 추수하기 위하여 새벽부터 일 년 내내 씨를 뿌리는 영적인 추수감사교회가 되어보자.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교회의 본질인 예배를 회복하고, 초대교회와 한국초기 교회처럼 디아코니아적 교회로 거듭나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한 거룩한 도구가 되어 영혼을 추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매일 매일 추수 감사절 교회로 체질을 바꾸어 나간다면 하나님은 교회의 존재 양식인 ‘부름 받은 공동체(Called Out Community), 세움 받은 공동체(Called Up Community), 보냄 받은 공동체(Called Into Community)’로 계속 붙들고 사용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