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교단 산하의 각 지방회마다 몇몇 교회들이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안다. 이것을 놓고 어떤 지방회는 교회로 인정할 수 없다고 결정하고 폐쇄하는가 하면, 어떤 지방회는 알면서도 쉬쉬하면서 덮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에 나타난 문제는 아니지만 계속되는 이 갈등에 대해 최소한의 교단적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우선적으로 가정에서 예배드리면서 가정교회를 하는 원인을 살펴본다면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상가 건물을 임대하여 목회하다 힘들고 어려워서 건물에서 쫓겨나거나, 또는 스스로 더 이상 임대료를 감당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건물에서 옮겨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나름대로 소신을 가지고 교회를 가정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이다. 교회 개척 처음부터 임대료에 따른 부담을 덜고 차근차근 가정에서부터 목회를 하면서 일정의 수준에 이르면 상가로 옮겨 가는 형태로서 최근 일부 교회들이 선호하는 상황이다.
물론 교단적으로 우리와는 다른 교단법이 있기 때문이다. 통합측 헌법 제2편 정치 제2장 제10조 [지교회 설립]에 의하면 “공동예배로 모이는 전도처 또는 기도처에 입교인 15인 이상이 있어 지 교회를 설립코자 하면 노회에 청원하여 허락을 받아 설립한다.”고 규정하고 있다(1992년 개정 8쇄). 즉 어떤 장소이든 공동예배로 모이는 장소이면 교회가 허락된다는 것이다.
2002년에 기성출신 박승로 목사는 21세기 목회의 새로운 대안으로서 가정교회를 제안한다.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교회의 정체성과 관련한다. 그는 셀 개념으로서의 가정교회를 제안한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1982년 필리핀의 Met Castillo는 가정교회의 정당성을 제시한다. 카스틸로는 그의 저서 [The Church in thy House]에서 신약의 교회 개념, 성경 안에서의 예배, 초대교회의 가정교회, 신구약에 나타난 가족 개념 등을 다루면서 가정교회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가정교회의 성경적 배경을 우선적으로 다룬다. 최초 믿음의 공동체인 초대교회가 가정교회로 시작했음을 우리는 잘 안다.
반면 우리 교단 헌장에는 모이는 장소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장소가 애매하다. 제8장 78조 9항에 의하면 지방회는 “지방회 내에 지교회의 신설, 이전, 통합, 폐쇄를 승인함과 아울러 총회사무국에 보고해야 한다(단, 교회가 신설된 이후 아래 15항 1, 2호에 미달되는 경우의 지교회를 직권 폐쇄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15항 1호는 “세례교인 10명 이상이어야 한다.” 2호는 “집회 장소로 33㎡(10평) 이상의 예배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즉 예배 처소가 준비되어야 한다는 의미이지만 사실 이것은 해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이것을 상가나 자가 건물로 이해했었다. 그러기에 가정 예배처소에 대해 관대하지 못한 잣대가 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집이나 상가 건물에 대한 구분은 없다는 것이다. 가정 예배 처소라도 33㎡(10평)가 넘는 곳은 얼마든지 예배처소로 인정 받을 수 있는 충분한 근거는 된다고 본다.
개척교회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임대교회를 접고 가정으로 들어갔을까? 목회자로 소명을 받아 최선을 다하지만 누구나 대형교회로 성장하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유지할 만큼 모이지도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가정으로 들어간 목회자들이 보다 더 떳떳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모습, 마치 죄인이라도 된 것 같은 모습들을 보면 참으로 마음이 시릴 정도이다. 왜 나만 이럴까? 왜 나만 무능할까? 갖은 생각을 하면서 자포자기 하듯 하는 목회자들을 좀 더 관대하게 보지 못하는 좀 나은 목회자는 무엇이 더 나은가? 우리는 한번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이것을 이용하려는 목회자도 있을 것이고, 또 생겨날 수 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정에서 목회하려고 목사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가정에서 시작하여 교회가 안정될 수 있다면 우리의 법을 수정해서라도 목회자가 떳떳하고 자유롭게 목회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 어떨까? 우리의 시선을 한 번쯤 바꾸어 보자.
장종용 목사/ 편집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