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지난 24일 개최된 교회개척학교 강의시 ‘개척교회와 도시 공동체’ 라는 주제를 가지고 발표한 성석환 교수의 발표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하여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필자가 속한 ‘한국선교적교회네트워크 MCNK(Missional Church Network in Korea)’는 한국교회의 새로운 변화를 꿈꾸며 동료 목회자, 신학자들이 함께 교제하고 있다. 이 중에는 성공회에 속한 목회자들도 있는데, 그들 역시 전통적인 교회가 아닌 새로운 교회를 준비하거나 이미 개척한 이들이다.
때때로 종교개혁 세미나를 함께 열어 토론을 갖고 성공회 측에서 집례한 성찬예식에 네트워크 회원들과 함께 참예하기도 한다.
MCNK가 성공회 사제들과 교제하게 된 것은 영국 성공회의 변화와 개척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던 필자에게 대한성공회에서 사제들을 위한 강연을 부탁한 일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150여 명이 모인 성공회 수련회 자리에서 필자는 영국 성공회의 새로운 교회개척 운동인 ‘선교형 교회(Mission Shaped Church)’와 그 실천 프로그램인 ‘교회의 새로운 표현들(fresh expressions of Church)’ 운동에 대한 내용, 그리고 지난 10여 년 동안의 경과와 변화에 대해 설명했었다.
성공회 사제들에게 개신교 목사가 영국 성공회의 변화에 대해 강연한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고교회 전통이 더 깊었던 대한성공회에서도 영국성공회에서 시작된 새로운 교회개척 운동에 영향을 받아 이미 7-8개의 새로운 교회가 개척된 상태였었다. 급기야 몇 해전 에는 이러한 운동을 전개할 ‘브랜든 연구소’를 설립하여 영국성공회의 프로그램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 파송하는 교회개척
교회를 개척하면 자립하기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재정적 문제와 사람과의 관계에도 생기는 문제들이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한 목회자들은 항상 긴장 속에 사역을 하고, 재정과 교인의 수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모교회가 있어 개척을 지원해 주었거나, 개척 당시 함께 파송된 교인들이 있었다면 사정이 훨씬 나을 수 있겠지만, ‘선교적 교회’는 교회를 개척할 때 재정지원의 규모나 인적 자원의 유무가 아니라 그 지역에 교회를 개척할 분명한 필요가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다.
필자는 한때 섬기던 교회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을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재정지원도 큰 어려움 없이 진행되었고, 60주년 기념으로 개척된 교회는 자리를 잘 잡아 몇 년 뒤 자립교회가 되었다. 그 교회는 초기 개척자금과 사역자의 사례를 지원키로 했었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그 과정이다.
사역자가 어떻게 준비하는지, 교회가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교인들은 어떻게 준비하는지에 관한 일들이었다. 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일이다. 선교적 교회는 선교의 주체를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기에, 교회개척의 주체도 역시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결코 사람이나 모교회가 아니다. 법적으로나 행정적으로는 모교회나 사역자가 개척하는 주체가 되겠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의 공동체를 그곳에 파송하시는 사건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개척을 결정하고 지원할 때 당회의 결의나 사역자의 판단에 의존하면서 이러한 신학적 의의를 상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하나님이 왜 ‘그곳’에 ‘우리’를 보내려 하실까?” 라는 단순하면서도 본질적인 질문에 답할 수 없다면 교회개척은 이미 준비가 부족한 것이다.
부천의 한 교회는 개척 10년 만에 분립개척을 시도하면서, 지난한 과정을 거쳐 꼭 교회가 필요한 곳을 찾기 위해 애를 썼다. 거의 1년여의 준비과정을 거치면서 사역자가 충분히 준비하도록 돕고, 교회가 필요한 곳을 조사하여 그 적합성을 판단하기 위해 교인들이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또 MCNK의 회원 이도영 목사가 섬기는 화성의 ‘더불어숲동산교회’는 최근 교회를 분립하여 개척하였다.
아직 모교회도 크게 성장한 것도 아니었고 재정도 그리 넉넉한 것이 아니었지만 150명이 되면 분립을 하겠다던 처음 마음대로 18명을 부교역자와 함께 향남 지역으로 파송했다. 무엇보다 그 지역에 꼭 필요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감이 강력하게 개척을 이끌었다. 이들은 파송의 주체를 자신들이 아니라 하나님으로 고백하기에, 하나님이 자신들을 파송하신 그 이유를 묻는 일에 절실하다. 자신들이 ‘파송된 공동체’라면, 그 파송의 임무를 분명히 아는 것이 그 교회가 존재해야 할 목적이 된다. 그런데 대부분의 개척교회가 이런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채 기계적으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카페나 도서관과 같은 새로운 형태가 그 교회를 선교적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파송된 목적에 대한 분명한 소명의식이 그 공동체를 선교적 공동체로 세우는 것이다.
작은 개척교회들은 자립교회가 될 동안은 외부에 자원을 내 보내는 사역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모든 에너지를 내부의 결속력을 다지는 일에 쏟게 된다. 그러나 선교적 교회의 개척은 파송된 공동체로서 공동의 비전과 선교적 임무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런 교회는 내부의 결속도 중요하지만, 지역의 자원들과 네트워크를 개방적으로 형성한다. 대형교회나 유명한 교회가 사회적으로는 유명할 수는 있지만, 선교적 소명에 충실한 개척교회가 지역사회의 여러 주체들과 협력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결코 적지 않다.
건국대 앞에 위치한 ‘시냇가에심은교회’를 섬기는 구은태 목사는 개척초기부터 마을의 통장으로서 여러 지역주민들과 함께 지역의 일꾼으로 섬긴다. 최근 이 교회는 공간을 공유하는 사회적 경제사업을 시작하여 지역사회와 소통하고 있다.
또 수원 영통에 개척한 하늘숲교회는 상가밀집 지역에 위치해 있고 20여 명이 채 안 되는 작은 공동체로 시작했다. 가정교회로 오랫 동안 모이다 공간을 얻어 개척을 한 경우인데, 이 교회는 그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여 상담과 치유사역에 집중하고 있다. 가정의 돌봄이 절실한 지역에서 교회가 그러한 역할을 감당하고자 늘 고민하고 있다. 파송받은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물론 이런 파송받은 선교적 교회의 정체성은 개척교회에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다. 기성교회도 이러한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명확해진다. 강남동산교회의 경우 벌써 10여 년이 넘게 지역사회를 섬기는 이들을 초청하는 행사를 벌이고 있다. 관공서, 교육 기관, 시민단체 등의 일꾼들을 초청하여 지역사회를 위한 일종의 공론장 형성의 역할을 간접 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영국 성공회의 새로운 교회개척 운동이 많은 도전을 주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지역사회에 파송한다는 개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옥스포드 교구는 상당한 기부금이 생겼는데, 보통 이런 경우 교회 보수, 유지를 위해 사용하지만 새로운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하고 메이비(Maybe)교회를 세우고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공동체를 대학가에 설립하였다. 우리로서는 흔한 예이지만 성공회로서는 획기적인 사례이다.
▲ 복제(cloning)에서 파송(missionizing)으로
영국 성공회가 새로운 교회개척운동의 필요성을 연구하여 2004년 발간한 보고서인 『선교형 교회(Mission Shaped Church』에 의하면, 기존 교회의 이름을 따서 똑같은 형태의 교회를 다른 곳에 세우는 일은 ‘개척’이 아니라 ‘복제’에 불과하다. 정확한 지적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DNA는 하나님나라의 유전자이지 모교회의 유전자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의 유전자는 교회가 파송된 곳의 역사와 상황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어야 하는데도, 모교회나 특정 교회의 이름과 시스템을 그대로 옮겨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한국에서는 대형교회나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교회들이 개척을 내보낼 때 대체로 그렇게 하는데, 이는 자신들의 교회를 또 하나 다른 곳에 세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마치 기업의 프렌차이즈 지점을 내듯이 비슷한 개념을 가진 비슷한 공동체를 전혀 다른 지역에 하나 세운들 그것이 하나님의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주님의 몸을 세우는 일을 마치 영업장을 마련하는 일처럼 한다.
10여 년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황우석 사건'은 유전자 복제와 줄기세포를 둘러 싼 사기극으로 결론 났었다. 하지만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이하면, AI가 사이보그가 영화 적 허구가 아니라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조만간 인간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복제품을 만나게 될 전망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인간이 될 수는 없다. 복제품은 복제품일 뿐이다. 교회개척은 성육신 하신 주님의 몸을 파송하는 선교적 행위이다. 교회개척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니, 하나님이 그 곳에 어떤 교회를 세우기 원하시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선교적 교회’는 멀티사이트교회(multi site church) 형태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마치 자회사를 거느리는 기업처럼 폐쇄적인 조직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파송된 곳에서 선교적 부르심에 따라 응답을 해야 하는데, 중앙에서 지시하는 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온전히 파송된 ‘선교적 교회’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교회개척을 프로그램처럼 운영하여 자신들의 영향력을 그대로 유지하는 폐쇄적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형태를 뭐라고 명명하던 그것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조직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의 개척은 파송의 의미를 가져야 한다. 파송 받은 교회는 그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요구에 응답하며 치열하게 그 몸을 세워야 한다. 지점이나 분점이 될 수 없다.
‘선교적 교회’의 개척은 어느 곳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성도간의 교제가 있고, 하나님 나라의 증언이 펼쳐지는 곳이면 교회라고 선언한다. 그곳이 카페이든, 바(bar)이든, 길거리가 되었든, 냄새나는 뒷골목이든 그곳에서 파송된 공동체로 선교적 사명을 수행하면 그곳이 교회이다. 물론 이를 위해 기술적인 문제들이 필요하다. 재정과 일꾼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이지 조직을 키우거나 유지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한국교회의 교회개척은 이제 달라져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교회공동체를 파송한다는 의미를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 개척을 지원하는 교회의 복제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두 교회 사이에 주종 관계나 본부와 지부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부적절하다. 하나님께서 파송하신 선교적 사명에 집중할 때, 지원한 교회와 지원받은 교회의 관계가 건강할 수 있다. ‘선교적 교회’의 개척은 파송하시는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임무에 최선을 다해 응답하는 행위이다. 이 일은 사람의 일이거나 교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일이기 때문이다.
성석환 교수 [장로회신학대학원 기독교와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