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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의 공간과 시간속으로 (2) 요르단
고대의 공간과 시간속으로 (2) 요르단
2025-12-15 오전 10:49:00    성결신문 기자   



요르단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시내산에서 출발하여 이집트 타바 항구로 향했다. 타바 항구에서 아카바 항구로 가는 배는 오전 1편, 오후 1편으로 운항시간은 1시간 반정도 소요된다. 요르단에 도착해 입국수속을 마치자 시간은 거의 4시, 와디럼 캠프에 들어가면 5시가 넘기에 다른 일정이 불가하다. 와디럼 캠프에 도착하자 붉은 아라비아 사막에 세워진 숙소가 대단히 훌륭하다. 주변의 멋진 환경이 어우러져 더욱 고급스런 느낌을 더한다. 그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진치고 밤을 지낸 사막에서 우리도 별을 바라보며 다음 여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요르단 2일 차 아침 일정으로 와디럼 계곡을 짚차로 움직였다. 이곳 와디럼은 같은 위치에 있는 이스라엘의 딤나 국립공원과 같이 고대에는 바다였다가 융기된 곳이라 기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루는 곳이다. 아울러 구리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 흙과 바위들이 모두 붉은 색을 띠고 있다. 

이러한 붉은 대지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이곳은 옛날 에돔(붉다는 의미) 족속들이 거주했던 곳이기도 하다. 짚차를 타고 주요 포인트에 내려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을 감상하며 모두들 사진을 찍기 바쁘다. 오랜만에 여행을 온 기분을 한껏 누리는 시간이다. 2시간의 짚차 투어 후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와디럼에서 페트라로 올라갔다. 

페트라는 알카즈네 신전과 거기까지 들어가는 시크 협곡으로 유명하다. 이곳 페트라는 나바테안 왕국(BC. 4세기~AD.1세기)의 수도였는데, 사막 한가운데서 물과 무역로를 장악하여 성장한 상업국가이다. 나바테안 왕국은 아레타스 4세(BC.9년 ~ AD.40년) 때 최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지금의 페트라도 그때 조성된 것이다. 

아레타스 4세는 복음서와 사도행전, 그리고 바울서신에서 간접적으로 출현한다. 헤롯 안디바가 자신의 조카이자 형수인 헤로디아와 재혼하고자 본부인과 이혼할 당시 그 본부인이 아레타스 4세의 공주였다. 이 일로 헤롯 안디바는 아레타스 4세와 전쟁을 하게 되고 아레타스가 승리하게 된다. 이때 나바테안 왕국은 여세를 몰아 시리아의 다메섹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다메섹에 총독을 세우게 된다. 

사도행전과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 회심한 후 다메섹에서 복음을 전하다 기존 유대교인들과 마찰이 생기자 총독이 그를 잡으려 하여, 광주리를 타고 성을 탈출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고후 11:32에 나오는 ‘아레다 왕의 고관’이 바로 아레타스 4세가 임명한 총독이다. 

현재 페트라에서 가장 유명한 건축물은 알카즈네 신전이다. ‘카즈네’가 보물창고라는 의미라 이곳에 보물들이 있을 것이라 여겨 많은 이들의 발굴과 싸움이 있었지만, 이곳은 왕족의 무덤과 신에게 제사하는 제단이 있을 뿐이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성배를 찾아서’의 배경이 되는 바람에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 지금은 많은 관광객들이 이 신전을 보러 찾아온다. 덕분에 한해의 관광수입이 어마어마하니 결국 이 신전 자체가 현재의 요르단에게는 보물창고가 되어졌다. 

이곳 페트라는 왕의 대로를 차지하고 있는 곳이었기에 AD.5~6기까지 소규모 기독교 공동체가 존재한 흔적이 있다. 이 대로를 따라 부흥의 물결이 요르단 전역으로 흘러가 사 19장의 예언이 성취될 수 있기를 되돌아오며 기도했다.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페트라에서 출발하여 아론의 무덤이 있는 호르산을 바라보며 므리바 샘이 있는 가데스 바네아로 올라갔다. 이 므리바 샘은 모세가 두 번째 반석을 지팡이로 쳐 물을 냈던 곳으로 민 20장을 배경으로 한다. 하나님은 왜 두 번째 반석에서 물을 냈을 때 모세에게 책망을 하셨을까? 믿지 않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못했다고 말이다. 

그 결과 모세는 이곳 요르단 느보산에서 가나안 땅을 바라만 보고 생을 마감해야 했다. 
예수님도 요 11:40에서 마르다에게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신 사건은 겔 37:13의 말씀을 성취하여 자신이 하나님임을 증거하기 위함이었다. 이렇듯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이 이뤄질 때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남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반석에 지팡이를 쳐 물을 내는 단계에서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는 단계로 나아가길 원하셨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널 때는 다 갈라지고, 뭍이 마른 뒤 건넜지만, 요단강을 건널 때는 법궤가 요단강 중간에 섰을 때야 비로소 물이 멈췄던 것과 같이 새로운 단계로 말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광야에 처음 들어왔을 때와 이제 광야를 나가야 할 때의 모습이 분명히 달라야 함을 나타내시고자 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지금의 이스라엘은 출애굽세대가 아닌 광야세대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모세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지도, 이루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 리더십이 이제 그 다음 세대로 넘어가게 된다. 므리바 샘을 바라보며 오늘을 사는 우리도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 새로운 지경으로 나갈 수 없음을 각인하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처럼 어제 한 일은 뒤로 여기고 날마다 죽고 살아나 새롭게 예수님을 향해 달려가야겠다고 결심한다.   

요르단 3일 차, 오전에 은혜로운 주일 예배를 드리고, 두 시간 반 정도 사해체험과 호텔 수영장을 이용했다. 이스라엘쪽 남 사해의 경우는 머드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 프라이빗 비치에는 머드도 충분하고, 사람들이 많지 않아 모두가 충분히 사해부영을 체험할 수 있었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기에 룸에서 샤워도 할 수 있도록 레이트(Late) 체크아웃을 할 수 있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이제 호텔을 나와 엘리야 승천지로 이동했다. 엘리야 승천지는 예수님 세례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 

예수님의 세례터와 엘리야의 승천지가 서로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게 어떤 의미일까? 개인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의 세례 이후 공생애가 시작되었듯, 엘리야의 승천은 그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이스라엘에서 메시아는 왕으로 이 땅에 오시는 분이다. 

예수님은 초림 때는 어린양과 하나님의 종으로 오셨지만, 재림 때는 왕으로 오실 것이다. 진정한 메시아로서 말이다. 살전 4:17 말씀처럼 성도들은 공중에서 그분을 영접할 것이고, 그와 함께 왕노릇(재판)할 것이다. 그렇기에 엘리야의 승천은 새로운 시작인 것이다. 그리고 이 일은 세례 요한과 같이 엘리야의 영을 받아 주의 오실 길을 예비하는 자들에게 이뤄질 일이다. 엘리야의 승천지에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를 부르며 그렇게 마음을 다져보았다.

우리는 이제 예수님의 세례터로 향했다. 성경에는 두 곳의 베다니가 나온다. 감람산 자락에 있는 베다니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인데, 전자는 마을 이름임에 비해, 후자는 지역 이름이다. 예수님은 요단강 건너편 베다니에서 세례를 받으셨기에, 엄밀히 말하면 이스라엘쪽 세례터보다 요르단쪽 세례터가 고고학적으로도 훨씬 더 정확한 곳이다. 그래서 이곳은 비잔틴 시대때 많은 기념교회들이 세워져 있었다.  

무엇보다 오늘날 요르단 쪽에 예수님 세례터가 있는 게 중요한 이유는 자국 내에서 무슬림에게 많은 핍박을 받는 중동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적 이유로 이스라엘에는 입국을 할 수가 없기에, 이곳 요르단으로 성지순례를 온다. 그들에게 성지순례의 백미는 단연코 예수님이 세례받으신 베다니 세례터이다. 그래서 이곳으로 성지순례를 온 이들은 감격과 서러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다. 

어쩌면 알파와 오메가이신 하나님은 이것을 아셨기에, 이들을 위해 예수님의 세례를 이스라엘이 아닌 요단강 건너 베다니에서 받게 하신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은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 쪽과 요르단 쪽에서 각각 순례객들이 세례를 행할 수 있게 시설을 해놓았다. 

베다니 세례터에서 우리는 세례 요한이 참수를 당했던 헤롯 안디바의 여름별궁(마케루스)으로 향했다. 마케루스는 하스몬 왕조 때 세워진 동쪽 국경 방어용 요새로 만들어진 것을 기원전 30년경 헤롯 대왕이 재건한 곳으로(베들레햄의 헤로디움과 같은 구조), 그의 사후 헤롯 안디바의 관할로 넘어갔다. 

이곳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헤롯 안디바가 자신의 조카이자 형수인 헤로디아와의 재혼한 것을 세례 요한이 책망하자 그를 옥에 가두었다가, 헤로디아의 딸 살로메의 춤에 대한 대가로 그의 목을 쟁반에 담아 주었던, 역사적, 성경적 사건의 실제 장소이다.

성경은 세례 요한이 갇힘으로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역이 시작됨을 말한다(막 1;14~15). 그렇기에 세례 요한의 갇힘과 죽음은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는 것과 연결이 된다. 누가복음은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를 짚어낸다. 아벨은 가인 곧 자기 의로 예물을 드린 자(예배하는 자)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요일 3:12). 그리고 스가랴는 하나님의 영을 받아 우상 숭배하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을 경고하다 죽임을 당했다. 이것은 세례요한의 죽음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는 헤롯 안디바가 유대 땅의 분봉왕으로서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것에 대해 지적했고, 그 결과 목 베어 죽임을 당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세례 요한의 아버지 역시 사가랴(스가랴의 헬라식 표기)였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통해 볼 때,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해서는 피 흘리는 종의 영적구조가 선재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들이 진리를 선포하고 책망하면 세상과 기득권이 된 교회로부터 핍박을 받는다. 

그러나 핍박과 순교는 그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실제로 임하게 하는 길을 준비하는 일이다. 이번 여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엘리야와 관련된 승천지와 예수님 시대 엘리야의 순교지에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도록 돕는 배필인 교회가 어떻게 주님 다시 오실 길을 예비하며, 그 중심을 새롭게 해야 할지 다시 한번 깊은 인사이트를 받고 새기며 수도 암만으로 올라오며 일정을 마쳤다.

요르단 4일 차, 드디어 오늘로 우리의 성지순례 일정이 마쳐진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성지순례는 처음에는 정말 시간이 안가는 듯 하다가도 중반을 넘어가면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게 마치 우리네 인생과도 같다. 사실 우리네 인생 자체가 주님 계신 시온성을 향해가는 순례길이 아닌가? 오전에 먼저 아모리 족속의 수도인 헤스본 성을 들렀다. 

이곳은 민 21:25~30에서 모세가 아모리 왕 시혼을 물리쳤던 성경적,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 원래 이 지역은 모압 땅이었으나 아모리 왕 시혼이 모압에게서 빼앗아 자기 땅으로 삼았다. 이것을 다시 모세 때 이스라엘이 시혼 왕을 쳐서, “아모리의 땅”을 르우벤과 갓지파가 차지하게 된다. 여호수아 이후 수세기가 지난 후에 모압이 다시 이를 빼앗아 일부를 모압 땅으로 회복하는데, 이것을 기록한 석비가 메사 석비이다. 성경이 아닌 다른 고고학 자료에서 성경의 내용이 언급되므로, 성경이 사실임을 증거하는 대단히 중요한 유물로서, 현재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있다.

우리는 헤스본에서 느보산으로 향했다. 느보산은 모세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며 숨을 거둔 곳이다. 사람들에게 요르단에서 가장 중요한 성지를 두 곳 뽑으라면 모두가 베다니 세례터와 느보산을 뽑을 만큼 이곳 느보산은 역사적으로나 성경적으로 중요한 현장이다. 그래서 초대 기독교 전통에서는 느보산을 모세의 산이라고 불렀고, 이곳에 수도원과 기념교회를 세웠다. 

특별히 이곳에는 큰 놋뱀 형상이 세워져 있는데, 이것은 이탈리아 예술가 조반니 판토니가 만든 ‘그리스도론적 상징(Christological Symbol)’이다. 예수님은 요 3:14~15에서 자신을 설명하실 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라고 하셨다. 느보산은 모세 개인에게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지 못한 안타까움의 현장이지만, 율법의 상징이자 예수님의 모형으로서의 모세는 약속의 성취(가나안)를 바라보는 현장이다. 

그리고 이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된다. 따라서 느보산에 놋뱀의 형상을 둔 이유는 모세의 마지막 장소에서 그림자인 율법(구약의 예표)을 뛰어넘어 예수의 십자가(신약의 성취)를 바라보라는 메시지가 담긴 것이다. 최근 몇 년간 여러 사건들로 이스라엘을 들어갈 수 없었는데, 이스라엘 땅을 지척에서 보니 그리움과 사무침이 울컥하며 올라온다. 아마 모세의 마음은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아쉬움을 뒤로 하며 함께한 지체들과 가나안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했다.

이제 공항 들어가기 전 마지막 여정으로 우리는 마다바 교회로 향했다. 마다바 교회가 유명해진 이유는 이곳에 모자이크로 된 대형 지도가 교회 바닥에 있기 때문이다. 이 지도는 6세기 중엽(유스티니아누스 1세)에 제작된 것으로 보는데,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북쪽은 레바논, 남쪽은 이집트 나일 삼각주, 서쪽은 지중해 해안, 동쪽은 요르단 동쪽 사막지대까지 약 150여개의 도시, 마을 이름이 그리스어로 표기되어 있다. 

특히 예루살렘의 주요 건물(카르도, 성묘교회, 다마스커스게이트, 다윗의 탑 등)과 베들레헴, 여리고, 요단강, 사해 등 주요 위치가 표시되어 있어, 그 당시 순례객들과 오늘날 성서지리를 연구하는데 있어 대단히 중요한 자료이다.

아울러 고대에는 오늘날과 같이 교통이나 안내표지가 제대로 되어있지 못해 성지를 방문한다는 것은 상당한 위험과 금전, 시간을 담보해야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이러한 대형 지도를 교회 바닥에 설치하여 예배하는 신자나 순례자가 발로 밟으며 성경 속 장소들을 “지나가는” 체험을 하도록 했다. 

이것을 보니 오늘날 우리가 하는 성지순례는 얼마나 쉬운 일이며, 복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비록 많은 재정과 시간이 들기는 하지만 목숨을 담보로 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런 성지순례도 여전히 힘들어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일까? 이제 우리의 여정은 여기서 끝났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불확실한 다음을 기약하며 우리는 공항으로 향했다.
글·송창엽 목사

서울신대(M.div), 백석 기독신대원 구약전공(Th.M)
시티미션처치(예성) 협동목사, 헤븐리라이트미니스트리 대표
debtor610@hanmail.net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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