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은 여러 사건사고가 많았지만 유독 성범죄가 많은 한해로 기억될 전망이다. 연이은 초등학생들의 성폭력피해가 일어나고, 성탐욕의 희생양으로 가정주부들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이어지면서 개별적 사례를 넘어 전국민의 공분으로까지 번지게 됐다. 성범죄 증가 이유로 물질사회속의 인간경시풍조 만연, 폐쇄적인 성 문화 및 정책에 따른 욕구분출, 연이은 언론보도에 의한 착시효과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현재 해일처럼 일고 있는 성범죄를 모두 설명할 수 없다. 본지에서는 해당 학문과 임상을 통해 관련분야를 깊이 연구해온 허정 편집위원으로부터 ‘성’전반에 관한 의견을 청취했다.
억압된 ‘성’, 심리학과 성경의 교집합인가?
‘성범죄’ 위험수위 넘어… 우리 사회 경계경보 울려야
사람들이 성에 탐닉하는 주된 목적은 쾌락을 통한 자기만족을 위해서이다. 이렇게 일시적이고 부분적인 것은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행복은 인간이 하나님 말씀 안에서 통전적으로 자신을 인식하고 즐거워할 때 이루어지는 현상이다(시1:1-3). 그러기에 어떤 한두 가지로 행복을 논할 수는 없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행복의 문을 여는 여러 가지 열쇠를 주셨다. 그 많은 열쇠 중 인간이 가장 왜곡하여 잘못 사용함으로 오히려 큰 고통과 상처를 입게 되는 것이 ‘성(性,sexuality)’이다.
‘성에 관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그 뿌리를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수많은 세월동안 논란의 중심을 지켜왔다. 또한 이는 어느 지엽적인 것도 아니고 동서양과 아프리카를 막론한 범세계적인 관심사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 근래에 찾아보기 어려울 만큼 우리사회는 ‘성’이란 주제로 인하여 많은 사회적 문제를 양상하고, 이슈가 되고 있다. 일찍이 라빈드라나드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에 의해 동방의 등불로 불릴 만큼 문명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던 우리나라가 반문명적이고 반인류적인 모습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OECD국가 중에서 자살, 흡연, 음주와 함께 성범죄 사건이 1,2,3위에 링크되는 불명예를 가지고 있다. 심지어 유치원 어린이와 초등학교 1,2학년에서 60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성범죄의 희생자가 되는 실정이다. 도저히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하는 짓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기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성하고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이 시대 담론이다. 하지만 담론만가지고는 안 된다. 이때까지 이런 담론이 없어서 이지경이 된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인간의 ‘성(性,sexuality)’에 대한 바른 이해가 전제되지 않은 채, 무조건적으로 ‘성’을 억제하고 억압해 왔기 때문에 더 큰 문제를 양성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텔레비전을 통해 방영되는 불륜드라마에 대하여 사람들은 비난의 화살을 보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주부로 대변되는 사람들은 욕을 하면서도 악착같이 그 드라마를 본다. 산업동향 기자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부 중 상당수가 외도의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설문에 응한 주부들 중 아직 외도를 하지 않은 주부들 71.1%가 차후 외도를 할 수도 있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외에도 노래방 도우미, 나이트 부킹 등 수많은 성적 탈선이 일어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다른 계층의 사람보다 한국의 주부들이 성적 욕구의 발산에 대해 더 억압이 많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눈에 띤다. 심리학자들의 대부분은 ‘성’심리는 인간의 원초적인 심리 중에서도 가장 근원이 되는 심리로 보고 있다. 인본주의 학자인 매슬로우(Maslow)는 인간의 기본욕구를 5단계로 나누고 그 첫 단계를 생리적 욕구(physiologic needs)라고 했다. 이 욕구는 가장 기초적인 의식주에 관한 욕구에서 성적 욕구까지를 포함한다.
특히 프로이트(Z. S. Freud)는 리비도(Libido-성욕 동)가 인간 삶의 근원적인 에너지라고 주장하며, 이를 너무 깊이 억압하고 왜곡함이 노이로제의 원인이라고 했다. 프로이트에 의하면 ‘성’ 에너지가 단순히 성 기능장애를 얘기하는 게 아니라 사회의 전반적인 여러 가지 갈등의 원인이 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 이 같은 심리학자들 주장을 보면 성을 억압하고 억제하는 문화적 풍토가 오히려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할 수 있다는 견해에 동조하게 하여 성을 개방적으로 가야 한다는 주창자들을 생성하게 이르렀다.
사실 심리학자들이 성을 억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무조건 대책 없이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승화시켜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는 ‘승화(sublimation)’가 누구나 손쉽게 이룰 수 없다는 점이다. ‘승화’란 원초적이고 용납될 수 없는 성적 및 공격적인 에너지나 충동을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며 유익하게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즉 이드(id)의 욕구나 성충동의 발산 방향을 완전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가치와 목표로 옮겨서 그것을 실현하여, 자신과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비록 비(非)기독교도인 심리학자들의 이론이 전혀 기독교 가치관과 다르지 않은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엄밀히 살펴보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일반적인 면에서 보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성경적 입장으로 본 ‘성’과, 프로이트와 같은 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성의 승화적 개념의 입장과는 분명 교집합적 요소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승화를 말하는 자들의 초점은 사회에 맞추어져 있다. 만약 사회가 반인륜적 반기독교적 이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올바른 ‘성’개념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