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죽어야 교회가 산다”고 한다. “목사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고 주장한다. 정답은 예수 안에 있겠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 선언하셨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이 끝이었다면 “구원”은 미완성.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을 보라”는 세례요한의 외침이 듣는 이를 새롭게 변화시키는 힘이다.
세상 죄, 곧 인류의 죄, 그리고 나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예수의 살아나심은 아버지의 뜻을 따랐으므로 아버지께서 다시 살려내셨다. 예수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니다. 예수 그는 아버지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보냄을 받은 자였다.
그리고 당신의 뜻을 이루려 함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뜻을 따라 사셨다. 예수는 죽임을 당하기까지 아버지의 말씀에 복종하셨다. “아버지여 이 잔( 십자가의 죽음)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자.
어떤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려는 이들은 예수의 정신과 심장을 가져야 할 것이다. “나는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받자. 어떤 목사가 “정치하려면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하더라. 그리고 설교문 부탁했더니 “정치하는 사람들은 설교문 쓰면 안된다” 하더라.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한 때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란 대중가요가 유행했고, “여기도 짜가 저기도 짜가 짜가가 판 친다” 란 노래가 금지곡이 된 때도 있었다.
기독인들이 비판과 정죄의식이 강한 편이다. 자칭 의인이 많다. 예수쟁이 둘 셋만 모여도 정치인들 매도하고 심하게 욕하는 입술을 쳐다 볼 때가 있다. 정치 집단 믿을 수 없다 한다.
그럼 교권을 향해 뛰고 달리는 교계 지도자들의 모습은 어떤가? 세상 정치꾼들 보다 더 하지 않는가? 그것 또한 독자에게 맡긴다. 내가 생각하는 교권주의자들 세상 정치꾼보다 더 하다 생각된다.
이유는 감히 거듭난 하나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제 예수 안에 들어왔으면 세상 방법 버리고 새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라는 말씀 앞에 겸손하자. 위로부터 새로 난 사람은 세속적인 습관이나 속물적 근성을 뿌리 채 뽑아 버려야 한다. “진주를 개와 돼지에게 던지지 말라” 하셨다.
어찌 그 정도의 수준으로 교권을 넘보는가? 양의 탈을 쓴 이리떼들 때문에 교계가 더럽혀 지고, 흙탕물이요, 썩은 물이 넘쳐나고 있음을 아는가? 모르는가? 회칠한 무덤 같고, 독사의 새끼들이 난무하고, 거짓 것들이 득실거리는 교회는 마귀 소굴이 되고 지옥 같다 하는 소리 안 들리는가?
세상의 소리 외면 말자. 세인의 소리를 제3의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는 귀가 열려있어야 한다. 십자가의 죽임을 당함과 다시 살려 내심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