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인 목사 [평화교회]
교회 안에 비평가들이 너무 많다. 몇몇 사람들은 비평이 있어야 교회가 건강하고 발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감수하기조차 힘들 지경이다. 사실 경험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외부의 비판보다 내부의 비판이 더 뼈아프다.
문제를 감추고 쉬쉬하는 것은 당연히 위험하지만, 다들 알고 있으면서 지금 고치려고 애쓰는 데 나까지 비판을 보탤 필요는 없다. 교회가 건강하기 위해 몇 가지 버려야 할 것들이 있다.
기밀 누설을 버려야 한다.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의 말을 전달한다. 교회에서도 중요한 말보다 거짓말, 가짜 뉴스가 더 쉽게 전파된다. 파괴적인 말, 분명히 상식에서 벗어난 말은 듣지도 말고 전하지 말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질문을 받는다면, 진실하고 신중하게 그와 의견을 나누어야 한다.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 마음이 신실한 자는 그런 것을 숨기느니라”(잠 11:13).
정치 논평을 버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의 실제 장소에 실시간으로 거주하셨다. 당시 로마 정부나, 유대 정치인들, 종교 지도자들, 열성적인 혁명가들을 만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번도 정치 상황에 대한 논평을 언급하신 적이 없다. 사람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려 할 때 그는 홀로 떠나셨다.
교회가 어느 정파나 정치인을 옹호하는 대변인이 된다면 더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의 임무는 복음을 나누는 것이지 정치 세력을 지지하거나 혁명을 일으키는 곳이 아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예민한 정치 주제를 언급할 때 매우 주의해야 한다.
갈등을 처리해야 한다. 어느 집단, 어느 교회나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룹도 다투기도 하고, 바울과 바나바는 갈등 때문에 선교지에서 갈라서기도 했다. 초대교회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봉사하는 집사를 세우고, 예루살렘 총회를 통해 갈등 해결을 모색하지 않았는가? 바울이 보낸 서신서의 상당 부분은 갈등 해결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원로와 후임 목사 간의 갈등, 담임목사와 장로 갈등, 부부 갈등, 성도들끼리의 갈등 등 갈등은 다양하다. 그런 모든 갈등 앞에 세 가지 태도가 있다.
첫째는 회피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난한다.
셋째는 중재하고 화합한다. 세 번째 태도를 권한다.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갈등 앞에서 겸손하고 부드럽게, 성찰하면서, 과감하게 양보한다면 우리는 갈등보다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죄를 버려야 한다. 날마다 주님 앞에 엎드리면서도 죄는 여전히 우리 앞에서 얼씬거린다. 주의 은혜로 과감하게 죄에서 멀어지고, 매일 죄를 회개하며 처리해야 한다. 죄가 되는 성적 행동이나 부적절한 개입을 피해야 한다. “음행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엡 5:3). 우리 몸은 성령의 전이다(고전 6:19). 죄가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장소로 잘 관리해야 한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목회 40여 년을 훌륭하게 잘 감당한 원로가 말년에 욕심 때문에 추락하고 덕이 되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가? 한창 교회를 돌보아야 할 담임목사가 정치 회합이나 총회 자리에 열중한다면 말씀은 언제 준비하고, 성도들을 언제 돌볼 것인가? 내게 맡겨진 양 떼를 돌보는 것이 내게 주어진 임무이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