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에 들어와 한국성결교회가 기독교대한성결교회와 예수교대한성결교회 두 교단으로 분립되어 상호 반목질시(反目嫉視)하며 갈등과 불신이 깊어가는 가운데 평신도 여성 최고 지도자인 홍대실 권사는 교단 정치와는 상관없이 순전한 마음으로 복음 전파를 위한 교회 건립과 보조에 전념하였다.
특별히 그녀는 예성교단의 초창기 시작에 있어서 단독으로 신학교를 건립하여 봉헌함으로써 결정적으로 성장의 토대를 놓을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부흥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홍대실 권사의 헌신과 수고를 통하여 예성 교단은 성결교신학교(현 성결대학교)로 인해 비로소 교단의 위상과 신학교의 면모(面貌)를 갖추게 되었고 발전의 발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한국성결교회 역사의 면면(面面)을 보면, 외국인 여선교사를 차치(且置)하고 성결교 여성지도자들은 모두 정규 신학과정을 수학하였던 교역자임에 반해서 홍대실 권사는 이와 달리 목회자 과정을 거치지 않은 평신도 최고 여성지도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단 분열이후 예수교대한성결교회 교단에 신학생 자원은 넘쳐 났지만 신학교 건물이 없는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단독으로 신학교를 건립하여 봉헌할 뿐만 아니라 학생 수가 늘어나자 성결대학교의 미래를 바라보며 자신의 땅을 학교 교지(안양 부지)로 기부하며 성결대를 기독교 명문사학으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가지게 하였다.
홍대실 권사의 믿음과 헌신은 신학교 건물이 부재한 예성교단의 난관을 해결하여 주었고, 성결대학교 제4대 이사장(학교법인 성결신학원)의 직무를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성결교 초기의 활발한 여성 사역의 문을 다시 열어 놓는 계기를 가져다주었다.
이 일은 이후 성결교 여성운동의 모본과 역할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마침내 보수지향의 예성교단 총회에서 여성 목사(2023년 여성군목까지 배출)와 여성 장로를 안수하는 데까지 발전하는 데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뿐 만 아니라 평신도 권사로서 그녀가 가정 생활과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 중심과 복음전도 우선의 삶은 모든 성결교회를 넘어서 한국교회가 배우고 본받아야 할 모본으로 간과할 수 없는 소중한 영적 유산이다.
홍대실 권사는 한국성결교회 모교회인 중앙성결교회의 최초 권사이면서 한국성결교 평신도 여성최고 지도자와 성결대 최초 여성 이사장으로 기독교 사학의 요람인 성결대의 교육선교를 위해 지사충성(至死忠誠) 헌신하였다.
홍대실 권사는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전쟁의 상흔(傷痕)이 남아있는 1960년대에 이르기 까지 암울(暗鬱)한 시대에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복음을 위해 살다간 믿음과 헌신의 여장부로 모든 성결인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정상운 목사 [본지 논설위원 / 성결대 명예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