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은 새 생명이 약동하는 희망의 계절이다. 이 좋은 계절에 죽어도 다시 살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확증해 주는 신비스러운 부활의 흔적이 있다. 자연계의 만물이 겨우내 얼어붙었던 그 차갑고 쓸쓸한 공간을 생명의 신비로 채우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어둡고 삭막한 무덤을 활짝 열고 새로운 생명의 출발을 확실하게 보여주신 것이다. 창조주의 은총은 삭막하던 자연계에 임할 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도 풍성하게 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사건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 가슴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기독교가 가진 복음의 진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의 영광에 있다. 만일 기독교 신앙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빼 버린다고 하면 과연 무엇이 남겠는가? 십자가는 인류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의 깊이를 보여준다. 부활은 인류 최대의 적인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절망 중에 있는 인간들에게 새 소망의 시대를 열어놓은 희망의 금자탑이다.
누군가 ‘사람은 사랑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말을 했다. 이 말은 사람은 희망 없이는 하루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과 같다. 그런 의미에서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신뢰하기 때문에 사랑과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바울은 이런 기독교의 진리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에 내재된 속성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불신의 황무지가 변하여 신뢰의 꽃동산이 되고, 절망과 어두움이 변하여 희망과 환희로 충만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은 그 삶의 현장이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낙원을 이룬다.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다스림이 있는 곳에는 치유와 회복과 기쁨의 역사가 일어난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는 강제성이나 억압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의 통치이기 때문이다.
지상 모든 교회의 존재 이유는 영혼구원을 목적으로 하고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는 이웃과 함께하는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절망하고 낙심한 사람들에게 희망의 산소를 공급하는 곳이다. 어떤 이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를 특정한 사람들을 위함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복음은 남자나 여자, 능력 있는 이나 무능한 이, 배운 이나 못 배운 이, 가진 이나 못 가진 이들을 불문하고 아무런 차별 없이 모두를 향해 항상 열려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봄꽃이 기지개를 켜고 그 화려한 자태를 드러내려고 하는 이 좋은 계절과, 함께 맞이하는 부활의 계절에 인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희망과, 죽은 것처럼 앙상한 나무 가지에 꽃이 피게 하시고 얼었던 땅에 새싹을 돋아나게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은총으로 희망이 가득하기를 빈다. 로켓발사와 제3차 핵실험 강행으로 말미암은 국제사회의 재제로 북한에서는 연일 전쟁을 거론하며 불안을 조성하고 있으나 우리 모두 부활의 신앙으로 희망을 말하고 희망을 노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