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신월동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이었다(1972. 5.28.). 하나님께서 고용복 전도사(당시)에게 개척지를 찾도록 하셨는데, 신월동에 철거민촌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도록 하셨다. 그는 처음으로 찾아온 이곳에서 해질 무렵 황토밭 같은 맨 땅에 엎드려 기도하였다.
“주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이곳에 뼈를 묻겠습니다.”
성령님께 그의 마음과 입술까지 사로잡혀 간구하였다. 그는 당시에, 신학교에서 전도용으로 사용하던 열 평짜리 천막을 빌려다가 쳤다. 철거민촌의 버려진 곳만 같았던 그 곳에 하나님의 성소가 세워졌다. 고용복 전도사는 장대에 높이 매어 단 녹음기로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질 때 세상 죄를 지시고 고초 당하셨네. 예수님, 예수님 나의 죄를 위하여 보배 피를 흘리니 죄인 받으소서.’라는 지금도 부르는 찬송가 144장을 최초의 종소리로 천막촌을 울리었다.
그렇게 해서 주의 몸 된 신월동교회는 지역적으로 도시환경에서 소외되었고, 사람이 살아가는 환경으로도 내몰려진 말 그대로 척박한 땅에 말구유에 나시었던 아기 예수님처럼 이 땅에 세워지게 되었다. 천막교회를 세우고, 2주간이 지났을 때, 고용복 목사의 형제들인 고석봉, 고수복 성도를 보내어 20여 평짜리 판잣집 교회로 손수 바꾸도록 하셨고, 그 후 원장희 집사의 헌신(108평 헌납)으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신월동교회를 세워 나가셨다.
신월동교회가 10년이 지나면서 고용복 목사는 다시 큰 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어찌 사람의 생각으로만 세울 수 있겠는가. 그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전이 세워지기를 바라고 기도를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기존에 있던 성전에 2층을 올려서 증축하려고 40일의 시간을 작정하고,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그에게 기도가 끝날 무렵 새 성전을 주실 것을 확신시켜 주셨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고용복 목사에게 대지를 바칠 분으로 원장희 집사를 보여주셨다. 그는 금식기도를 마치는 날, 하나님께서 주신 편지까지 보내어 원 집사에게 전달하도록 하셨다. 그때로부터 6년을 기다려 마침내 441평 현 대지 위에 820평의 성전을 짓게 허락하셨다.
2. 고용복 목사에게 주신 비전
신월동교회의 역사가 반세기에 가까워지면서 하나님께서는 교회가 장년기에 다다랐으니, 이제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더욱 섬겨야겠다는 비전을 갖게 하셨다.
1 가까이는 ‘고구마 전도 법’으로 전교인이 이웃을 전도하여 본 교회가 끊임없이 질적 양적으로 성장하도록 힘쓴다.
2 멀리는 ‘민들레 전도 법’으로 세계 복음화에 주력하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에 소원을 품게 하였다. 신월동교회가 주민을 섬기며, 함께 하는 지역은 김포공항의 소음으로 주거지역의 취약지구일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하여 지역의 주민들은 이곳에 올 때부터 ‘한 3년 머물다가 떠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들어온다. 그러므로 그 안에 은혜를 받고 성전 중심으로 머물러 사는 이는 신월동교회를 성장시키는 밑거름이 되고, 떠나는 이는 알곡으로 훈련되어 ‘민들레 씨’ 같이 세계 어디로 가든지 그곳에서 살며 교회를 세우고 섬겨서 주의 나라 확장에 쓰임 받게 하자는 것이 ‘민들레 전도 법’이다.
지금도 50여 년 역사 속에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에서 선교사로 사모, 장로, 권사, 집사로 교회들을 섬겨 나가는 ‘민들레’ 성도가 많이 있어 소식을 주고받고 있다.
3개척 선교를 통해서 자립하게 하므로 지역마다 장자교회로 성장하여 또 다른 교회를 선교하는데 협력하는 지 교회들을 세워 나가게 하셔서 지금도 각지에서 30여 교회가 성장하고 있다.
421세기 첨단 과학 지혜를 십분 활용하여 문서, 방송, 영상, 인터넷을 통해서 복음이 세계에 충만케 하고 다시 오실 주님 앞에 책망이 없고 칭찬만 듣는 데살로니가 교회가 되도록 더욱 힘쓰기를 기도하게 하셨다.
5교회(지교회)의 울타리가 되는 교단에도 부흥사회, 국내선교회, 전국사모회를 창설하여 성숙하도록 돕는 섬김의 사명을 성취하도록 하나님께서 베풀어 역사해 주셨다.
3. 1대 목사의 은퇴와 2대 목사의 취임
1972년 천막성전으로 시작된 고용복 목사의 목회현장은 한 마디로 수심이 없는 달려갈 길이었다. 그의 천막교회에는 그렇게까지 가난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가난하기에 겸손했던 이들, 병이 들었지만 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병을 짊어져야만 했던 사람들-육체가 병이 들어서 더욱 하나님을 사랑한 사람들을 품으면서 달려온 목양사역의 40년이었다.
이제, 그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에 다 채워질 때가 되도록 자신을 아끼지 않았는데, 교단의 헌법에 만 70세까지 담임으로 시무하도록 된 규정에 따라 사임을 해야 하였다. 그의 사임을 서운해 하면서 동시에 교회의 미래를 내다보며 기도하던 당회원들은 당시에 미국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고신원 목사를 담임으로 모실 것을 마음으로 그리워하였다.
그렇지만 그때, 고신원 목사는 미국에서 300명의 성도가 출석을 하는 교회를 목양하고 있었다. 교포교회에서 300명이라면 분위기적으로 그 규모가 얼마나 될까? 교회를 연구하는 이들의 견해를 빌어보면, 내국인 교회에서의 성도 1명은 외국의 교포공동체에서는 10명에 버금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당시에, 고신원 목사가 300명의 성도를 목양하며 교회를 섬겼던 규모는 한국교회에서 3,000명 성도를 목회하는 규모였다.
그 즈음에, 하나님께서는 고신원 목사에게 귀국에 대한 생각의 씨앗을 품게 하셨다. 그것은 그가 신월동교회를 맡아보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13년에 가까운 시간을 미국에서 지냈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모시고 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다. 그는 당시에, 부모님을 가까이 하면서 아들로서의 시간을 가져야 하겠다는 각오를 갖게 된 것이다. 부모를 보살펴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삶이라는 확신을 갖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와서 교회를 개척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그렇게 기도를 하면서 귀국에 대한 마음을 품고 지낼 때, 신월동교회 당회원들로부터 고용복 목사의 후임 목회자가 되어 주기를 간절히 원한다는 소식을 대하게 되었다. 귀국하여 교회를 개척하고, 부모의 곁에서 지내기를 원하면서 기도를 해왔는데, 자신을 자라도록 이끌어 준 신월동교회에서 자기를 원한다니까 고신원 목사는 다시, 하나님의 계획을 여쭙기로 하였다.
신월동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을 감당하는 중에, 20일이라는 기간을 작정해서 금식기도에 들어갔다. 기도를 하면서 먼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목회자로 세워져 살아드려야 하는 삶을 묵상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세워지는 종이 되기를 구하였다. 감정적으로는 신월동교회를 섬김으로써 지금까지 자기를 키워주고, 후원해 준 교회에 보답을 하는 것이라 여기지만, 그것까지도 하나님께 드려서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간구하였다.
작정했던 기도의 시간 3주간 째, 그의 눈에 모세의 지팡이가 보여 졌다.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던 그에게 보여 진 모세의 지팡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애굽으로 내려가던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그의 손에 지팡이를 쥐게 해 주셨다. 그런데 그 지팡이는 새롭게 깎아서 만든 지팡이가 아니라, 평소에 그가 사용하던 지팡이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의 손에 익숙하였고, 잘 잡히는 지팡이를 그대로 쥐어주셨는데, 그가 호렙산에서 내려올 때, 그것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어 있었다. 지팡이를 보는 그에게 성령께서 신월3동을 크로즈업 해 주셨다. 신월동은 고신원 목사가 어린 시절 때부터 자라온 동네였다.
신월동은 모세의 손에 들려있었던 지팡이처럼 고 목사에게는 익숙한 곳으로 마치 잘 잡히는 지팡이와도 같았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에 신월동을 쥐게 해주셨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신월동은 예전에 그가 자라고 성인이 되었던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성지-거룩한 땅’이라는 감동을 갖게 하셨다.
이것을 깨달은 그는 마지막 하나님의 응답으로 교회에서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투표에서 3분의 2로 찬성표가 나오면 그것을 하나님의 응답으로 받아들기로 했다. 성도들의 청빙찬성 투표의 결과는 3분의 2를 얻게 되었고, 그는 신월동교회의 2대 목사로 취임하였다.
4. 고신원 목사의 변화 : 교회론에의 도전
고신원 목사가 담임으로 취임하여 강대상을 지키게 되었을 때, 성령께서는 그에게 목회의 의미를 새롭게 보도록 강권하셨다. 그의 목회는 교회 밖에 있는 자들을 찾아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도와주고, 그들이 교회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 주는데 주력하는 것이었다. ‘한 영혼을 더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그에게 있는 기도와 열정을 쏟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하나님께서 그의 아내를 데려가시고, 고신원 목사에게는 목회의 사명을 새롭게 보게 되는 경험이 찾아왔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목회에 대한 새로움의 시간을 경험하게 하신 것이다. 교회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경험하는 것이었다.
이때, 그에게 목사로서 바라보도록 하신 교회는 교회가 부흥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사명을 감당해야 되는 곧 ‘교회 밖의 교회’였다. 주님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것처럼 교회 자체의 존립에 목적을 갖지 않고, 세상으로 들어가서 세상과 함께 하는 교회에 대한 생각을 갖게 하신 것이다. 아내와 바꾼 비전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지 몰라도 갑작스럽게 아내를 하나님의 품으로 보내게 된 시간에, 하나님은 그에게 ‘새 목회’를 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고신원 목사에게 교회에 대한 새로 봄을 주신 비전은 교회공동체는 지역사회에서 단절된-또는 구별된 공동체가 아니라 지역을 교회로 삼으라는 것이다. 교회가 지역에서 주민이 되어 지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을 그의 목회 과제로 삼게 하셨다.
이러한 목회는 전통적인 교회에 도전이 될 것이다. 이제까지 교회는 지역을 전도의 대상으로 여겼지, 지역을 하나님의 나라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교회가 주민이 되어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나누게 될 때, 교회는 지역에 영적인 의미에서 산소를 공급할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새 기운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신월동교회를 사용하셔서 새로운 교회론을 써 가시리라고 확신한다.
- 고신원 목사에게 주신 목회 비전
1. 구원의 감격으로 예배가 뜨거운 교회- ‘예배’
2. 예수 사랑의 교제가 넘치는 현재교회(성도)와 미래교회(불신자)- ‘교제’
3. 기도와 말씀으로 충성스런 일꾼으로 세워지는 비전을 가진 교회- ‘훈련’
4. 주님의 몸이 되어서 지역사회 안으로 들어가 섬기는 교회- ‘봉사’
5. 성도 개개인이 성령님께 충만해서 세계선교에 앞장서는 교회- ‘선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