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귀한 아들을 군에서 잃고 그동안 상상하기 조차 힘든 아픔을 겪으며 그 귀한 아들과의 이별의 역경을 이기고 타인을 향한 베풂으로 승화한 진정한 크리스찬을 만나 보기로 했다.
이분은 왜 하나님을 믿고 그 인도함 속에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난 이게 무언가?
이런 상황에 어찌 하나님에 대한 원망스런 순간이 없었을까. 하지만 사무치는 슬픔을 딛고 아들 죽음의 의미를 찾으려고 애쓸 때 나에게는 하나님이 계시니 불행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다시 일어서자 홍근이를 위해서!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녀를 잃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말이 있는데 이것을 뛰어 넘어 가슴에 묻기 보다는 한알의 밀알로 세상에 뿌리길 주저하지 않았던 고 곽홍근 상병의 어머니 장은경 권사를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강병익 장로)
(본 내용은 신월동교회에서 나라를 지키다 순국한 고 곽홍근 상병(부: 곽성국 집사, 모: 장은경 권사)가정에서 다음세대 일꾼 양성을 위해 목회자 자녀 장학생을 선발하여 후원하는 내용을 알리기 위해 인터뷰한 내용입니다)
권사님, 아드님이 군대에서 사고가 어떻게 났나요?
홍근이가 21살에 운전병으로 입대 해서 교육을 받았는데 열심히 훈련을 잘 받아 조교로 발탁이 되었고 이후에도 조교들이 치르는 시험에서 1등으로 선발되었습니다. 보통은 상병이나 병장이 되어야 선탑(운전교육생 옆에 앉아 지도 하는 조교)을 하는데 홍근이가 워낙 성적도 좋고 잘하다보니 5개월 일병인데도 불구하고 신병교육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교 업무를 수행하던 중 신병이 원래 가야 할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운전하다가 차가 전복되었습니다. 직접 운전을 하던 신입 운전병은 생존했으나 옆에 조교로 탄 홍근이는 생명을 잃었습니다.
아들의 피로 산 값진 연금인데 어떻게 장학금을 선뜻 내 놓게 되었나요?
우리도 넉넉한 형편은 아니지만 아들의 목숨값으로 나오는 연금을 헛되이 쓰고 싶지 않아 남편과 상의 끝에 장학금으로 사용하고자 결정하였습니다. 홍근이를 저희 남편이 ‘늘푸른소나무’라고 핸드폰에 저장해 두었는데 그 이름을 따서 ‘늘푸른소나무 장학금’이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작년부터 5명의 목회자 자녀에게 100만 원의 장학금을 후원하고 있고 올해로 2회째 입니다.
장학금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1인당 100만 원 씩 5명에게 혜택이 돌아 가도록 500만원을 매년 후원 하기로 했습니다.
왜 같은 교회 학생들도 많은데 목회자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주게 되었나요?
신월동교회에서 장학사업을 하고 있어서 담임목사님과 상의를 먼저 했습니다. 우리교회는 이미 장학사업을 하고 있기에 홍근이 이름으로 하는 장학금은 교단 내 어려운 목회자 자녀분들께 드리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에 따라 목회자 자녀분들에게 후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이번 한번 지급으로 끝나는 건가요?
아닙니다. 될수 있으면 매년 안 끊기고 오래 오래 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장학사업 만큼은 꼭 하려고 합니다.
집안에 아들이 귀하다고 들었는데요?
홍근이 아빠 형제가 3남 3녀인데 저희 홍근이만 아들이고 다 딸만 있습니다. 저희 시댁에선 아들이 홍근이 혼자라 시부모님이 엄청 귀하게 여기셨고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대가 끊긴 상황입니다.
홍근이는 권사님에게는 어떤 아들이였나요?
세상에 살면서 제일 잘한 일이 홍근이를 낳은 일이었어요. 홍근이는 품성도 바르고 착하고 누구보다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었어요. 제가 힘들 때 얘기도 잘 들어주고 저랑 같이 시장도 가주고, 교회도 함께 가주는 다정다감한 아들이었고 정말 제 삶의 희망이자 전부였어요. 저 같은 사람한테서 어떻게 이런 아들이 태어났나 싶을 정도로 정말 좋은 아이였답니다. 제가 참 많이 의지했는데 그런 아이가 없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가 않고 힘들기만 합니다.
홍근이 할머니도 생전에 계신가요?
네. 올해 88세이신데 요양원에 계세요. 홍근이를 떠나보낸지 벌써 2년 5개월째인데 아직도 홍근이가 하늘나라에 갔다고 이야기를 못 드리고 있습니다.
워낙 할머니의 손자 사랑이 남 달라서 아시면 충격이 크실까봐 말씀을 못드리고 있는데 면회갈 때마다 홍근이만 너무 많이 찾으셔서 이젠 말씀을 드려야 할 거 같은데 걱정입니다. 충격받아서 돌아가시면 어쩌나 싶어서요.
생전에 홍근이는 꿈이 있었나요?
미국 메이저리그 구단에 취직 하는게 꿈이었어요.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기록 을 정리하고 그곳에서 일하고 싶어서 대학도 응용통계학과를 갔었는데 이젠 그럴수가 없게 되었네요. 하늘에선 이루고자 하는 꿈 다 이루기를 바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