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찐 가을볕 내리쬐는 날, 호수 끝머리에 앉아 떫게 물드는 호수를 바라보는 백로 한 쌍에 가을이 덮여 있다. 깊은 생각에 빠진 그들은 혼자가 아닌 둘인데도 고독하게 보인다. 가을은 고독의 시간이다. 그리고 사색의 시간이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하는 인간 실존의 문제부터, 무언가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을은 참 축복된 계절일 것이다.
예수님의 인기가 날로 높아져 무리가 모여들고, 심지어 임금으로 모시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오히려 무리 들을 뒤로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시며 사색과 고독을 즐기셨다.(눅 5:15-16)
2차대전 후 독일과 프랑스 지식인들이 실존주의(Existentialism)라는 새로운 철학을 발전시켰다. 실존주의자 들은 인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사상으로 깊고 폭넓은 성찰과 사색으로 스스로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며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다. “성찰(철학)이 없는 삶은 가치가 없다”하던 소크라테스와 맥이 통하는 구석이 있다. 실존주의는 인본주의와 이웃사촌이지만 고독을 넘나들며 사색을 통해 자아를 찾으려 한 것은 깊은 생각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키르케고르, 야스퍼스, 사르트르 등이 대표적인 학자들이다.
그런 가운데 독일의 학자들이 즐겨 사용했던 말 중엔 “고독은 나의 고향”이라는 말이 있다. 인간 실존에 대한 사색은 고독의 산물일 것이다.
여름 내내 폭염, 장마 등등으로 사색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지나온 것 같은데, 다행히 사색하기 좋은 가을이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갈색으로 물들어가고 잔바람도 이기지 못해 하나씩 떨어져 이리저리 굴러다니면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나? 하는 정도의 사색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다.
깊어만 가는 가을에 실존주의자는 아닐지라도 고독을 고향처럼 반길 수 있는 깊이 있는 삶을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고독의 시간을 만들고 즐기셨던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 역시 고독을 고향처럼 여길 수 있는 여유롭고 깊이 있는 삶이 되었으면 한다.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눅 5:16)
淸水 ehc3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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