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03회기 총회에서는 특별한 시상을 하였다.
30년 이상 근속교역자에 대한 포상인데 무려 51명의 목회자들이 이에 해당되고 아직도 진행형이다.
한 교회에서 원로목사 기준인 20년 근속하기도 힘든데 30년이라니 정말 대단한 일인데 이중에서도 우리교단 최장수 현역근속자로 무려 44년 동안 한 교회에서 목회를 하고 지난 6월 18일 은퇴한 은현교회 서순석 목사를 만나 인터뷰를 하였다.
인터뷰를 하며 교회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목사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교회 예배당 외에 유치원, 교육관, 선교관, 식당, 각종 소모임실, 그뿐인가? 26살 전도사 시절부터 삶과 정열을 쏟아 부어 교회를 섬긴 흔적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시끌벅적이고 그렇게 일군 교회를 들어서면 교회와 역사를 함께한 포도나무가 마당 전체를 뒤덮은 그늘막은 금액으로 환산 할 수 없는 값진 은현교회 성도만이 누리는 시원한 안식처이다.
내가 낳고 키우는 자식도 잔소리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자리를 떠난 사람이 이래라저래라 간섭하거나 시시비비를 따지거나 잔소리를 늘어놓는다면 누가 그를 반기며 좋아하겠는가?
어떠한 경우든 목회 성패는 후임목사가 져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누가 선택했든 상관없이 후임 조대연 목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칭찬하고 자랑하는 서순석 원로목사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 44년을 한결같은 모습으로 섬긴 교회
Q) 목사님 은퇴를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44년 한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이는 우리 교단에서 현역 목회자론 가장 오랫동안 섬기신 기록인데, 처음 개척하실 때 이야기를 먼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 저는 불신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7살 되던 해, 동생의 인도로 처음 발 디딘 교회는 남루하기 그지없는 작은 개척교회였지만 제게는 새로운 세계였습니다. 18살 되던 해 교회에서 여름 수련회로 한얼산기도원에 가게 되었습니다.
집회 가운데 성령의 불이 제게 강력하게 임했고, 집회를 인도하시던 故 이천석 목사님께서 ”목사 될 놈들 손들어!“ 하시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내 손이 번쩍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내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많은 반대가 있었지만 그후 성결교 신학교에 입학해 4학년 2학기 되던 1980년 6월, 신혼 살림집 전세금, 당시 190만 원을 드려 은현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영혼 구원에 급하셨는지 26살 된 철부지 같은 사람을 뽑아 일 하시도록 하셨습니다.
Q) 44년 목회 여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되돌아보면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철도 덜 든, 그리고 목회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한 26살 전도사였습니다. 20여 평 되는 사무실을 임대하여 한쪽은 예배당, 한쪽은 살림집을 꾸려 어머니와 두 동생, 그리고 아내까지 가족이 중심되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하고 전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교인들을 하나씩 붙여주셨습니다. 저는 특별히 청소년 사역에 은사가 있었습니다.
개척 1년 만에 중고등부가 50여 명, 청년부가 30여 명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교인들 숫자가 늘어나며 예배당은 5번의 이사를 하게 되었고, 개척 15년째인 1996년에 성전 건축을 했습니다. 그때 나이가 42살이 었습니다. (대지 5.058m², 연건평 892.56m²) 성전 건축 이후 IMF가 와서 건축 부채문제로 큰 위기가 왔었지만, 몇몇 성도님들의 헌신으로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 기간은 저를 연단하시는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우리교단의 빅5 안에 들어가는 교회 두 군데 에서 청빙도 있었지만, 거절하고 달려오다보니 44년 한교회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문학적 감각으로 성결신문 영암골을 25년간 연재
Q) 목사님의 44년 목회의 큰 핵심사역은 무엇이었습니까?
A) 하나님은 저를 다양한 곳으로 이끄시고 사용하셨습니다. 크게 목회, 문학사역, 신학교 사역 세 가지입니다. 먼저는 은현교회를 부흥성장 시켜가는 일, 목회 그 자체였습니다. 감사하게도 교회는 큰 어려움없이 성장하였고, 미국에서 공부하고 여러 교회들을 방문하면서 다음세대의 비전을 하나님이 주셔서 20여 년 전 부터 다음세대에 큰 관심을 두어 목회 한 결과 우리 교회는 다음새대가 힘있게 움직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또 하나는 문학적인 은사를 주셔서 황금찬, 김성영 두 분의 추천으로 시인으로 등단하게 되었습니다. 각종 기독교 언론에 칼럼을 기고 하였으며, 특히 교단 신문인 성결신문사의 요청으로 창간부터 지금까지 1면 우측에 ’영암골‘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그 기록들이 쌓여 몇 권의 칼럼집, 시집도 발간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신학교에서 한국교회의 미래인 신학생을 가르치는 사역이었습니다.
한남대학교, 성결대학교, 총회신학교, 신대원 등에서 외래강사, 겸임교수, 교수, 학장으로 22년간 섬겨왔습니다.
Q) 목회하시면서 어려웠던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세상에 쉬운 것이 없습니다만, 목회는 영혼 구원과 더불어 교회를 성장, 부흥시켜 나가야 하는 크고도 놀라운 일입니다. 지난 44년을 되돌아보며 생각했을 때, 개척하여 성전 건축하고 헌당할 때까지는 재정이 어려움이었고, 그 다음은 성도와의 관계, 그 다음은 건강의 어려움이었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도록 힘이 되어준 아내와 성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Q) 후임자는 어떤 분입니까?
A) 후임인 조대연 목사는 젊은 시절 제 모습을 보는 듯한 열정과 섬김이 가득한 분입니다. 서울대학교 졸업자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적 우월감 대신, 자기를 낮추는 겸손으로 다듬어지고 영적인 민첩성과 변화하는 시대를 잘 이해하는 분 이기에 44년 목회를 이어 교회를 부흥성장 시켜나갈 후임으로 여겨집니다.
Q) 후배 목사님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A) 지나고 돌아본 저의 목회 44년은 전반기는 복음 전도와 교회 부흥을 위한 열정으로, 중반기에는 나름대로 정리된 목회 철학으로, 후반기에는 무너진 건강과의 싸움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다.’라는 말이 있듯이, 목회 현장에서 받는 스트레스, 불규칙한 식사, 운동부족 등으로 목회 후반기가 되면 많은 목회자들이 건강을 잃어 어려움을 겪곤 합니다. 건강관리는 젊었을 때부터 해야 합니다.
이 시대는 변화의 시대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본질은 변할 수 없습니다. 그 바탕 위에서 변하는 시대 환경을 바라보며 이해하고, 해석하여 복음을 적용해야 합니다. 이러한 능력으로 영혼 구원하며 공감 능력을 키우고 소통에 능한 예성 목사님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헌신, 자기 희생, 자기 부인, 자기 열심 없이는 목회 현장의 열매는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인내하면서 기도하고, 전도하다보면 열매가 있을 것입니다. 젊은 목사님들을 통해 우리 교단이 부흥성장 되기를 기도합니다.
▶▶ 다시 시작하는 제2의 목회
Q) 은퇴 이후의 계획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영어로 은퇴는 ‘Retire’라고 합니다. 타이어를 새로 갈아낀다는 의미를 뜻한다고 합니다. 사실 목사는 하나님 앞에 갈 때까지 목사로서 정체성을 갖고 살아야 하는데,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저는 수년 전부터 은퇴를 놓고 기도하며 크게 2가지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글 쓰는 일입니다. 감사하게도 두 곳 신문사에서 은퇴 후에도 원고를 보내 달라는 요청이 있어 그 일을 계속하려고 합니다. 또 하나는 목회 컨설팅사역입니다. 44년 목회, 22년 신학교 사역을 바탕으로 힘겨워하는 후배 목사님들을 대상으로 목회 컨설팅과 격려를 전하고자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종교법인 ’고넬료 세계 선교회‘를 설립하려고 합니다.
은퇴 후 첫 주일에는 건강 때문에 힘겨워하는 후배목사님 교회를 찾아 설교도 듣고, 식사와 커피를 마시며 대화도 하였고 약간의 격려금도 드렸습니다. 오히려 제가 행복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습니다. 올가을까지 매 주일 계획되어있습니다.
대담 및 글 강병익 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