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가을이다. 드디어라고 한 이유는 지난여름이 폭염과 열대야 등으로 너무 힘겨운 시절이어서 가을이 오기를 기다렸기 때문이다. 여름과 가을을 연결해가는 9월을 맞고 보니 해그림자가 조금씩 길어지고, 고추잠자리는 어디 있다 나오는지 떼 지어 날아다닌다.
가녀린 꽃대 위에 연분홍색 코스모스는 벌써부터 나와 9월을 기다렸다.
“기다리라 오래오래 /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 지루하지만 더욱 /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 상처받은 짐승들도 / 제 혀로 상처를 핥아 / 아픔을 잊게 되리라 / …”
나태주 시인은 ‘다시 9월’이란 시에서 9월이 오기를 오래도록 기다렸다고 한다. 낙엽과 열매, 그리움, 추억 때문에 9월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9월은 ‘치유의 계절’이기 때문이어서 그렇게 기다렸다고 한다.
지난여름 내내 우리는 무더위, 열대야, 야멸찬 폭염, 땡볕, 홍수, 그리고 열매 없는 사역의 빈 그물을 보며 상처투성이가 되었다. 기다렸던 가을에는 아직 남아있는 햇살과 신선한 바람, 님의 은총으로 상처가 아물고 치유되어 기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받은 고난과 시련이 많았던 것만큼 성숙 되면 좋겠다.
우리는 너나없이 치유 받아야 할 상처 서너 개쯤은 남몰래 지니고 있다. 맑은 호수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운 것 같지만 이따금 헤집고 나와 삶을 할퀴고, 생채기 내며 고통과 슬픔을 준다. 언제까지 반복할 것인가? 오는 가을에는 무엇보다도 치유의 은총을 받아 숨겨진 상처들을 도려내고 새살로 채웠으면 한다. 짐승들처럼 제 혀로 상처를 핥아낼 수 없기에 십자가 보혈이 필요한 것 아닌가?
봉지에 쌓인 포도송이는 9월 햇살 아래 살이 오르고 단맛이 들고, 대추는 천둥 번개 태풍 서너 개 맞으며 붉게 물들 것이니, 이제 우리도 선선해진 바람의 속삭임을 들으며 보혈의 은혜로 치유되고 소생하며 여물어가면 좋겠다.
실패의 기억 좌절의 늪을 딛고, 넓은 벌판을 향해 달려가는 9월이 되었으면 한다. 막힌 담을 헐고, 떠난 사람 돌아오도록 길을 열고, 가슴 시린 사람 품을 수 있는 9월이면 이 계절이 더 향기로울 것이다.
그리고 우리 하나하나가 따듯한 피가 흐르는 강물 되어 세상을 적실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淸水 ehc3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