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하루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산야를 보노라면 스쳐 지나가는 시가 있다. 미당 서정주의 시 ‘추일미음(秋日微音)’이다.
‘울타릿가 감들은 떫은 물이 들었고 / 맨드라미 촉계는 붉은 물이 들었지만 /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었는고’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가을 한복판에서 시인은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이 가을날 어떤 물이 들어가고 있을까?’ 인생을 물들어가는 삶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어느 날 링컨의 참모 중 한 사람이 곁에 두면 유용하게 쓰여질 사람이라며 한 인물을 천거했다. 링컨은 그 사람과 잠깐 면담을 마친 후 등용하지 않았다. 후에 그를 천거한 참모가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링컨은 ‘그 얼굴을 보니 성경 한 구절도 읽지 않은 듯하여’라 했다고 한다.
삶의 흔적은 그 얼굴에 나타나기 마련이다. 성형 기술이 발달 되어 얼굴 모습을 이리저리 고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하지만, 얼굴로 나타나는 성품이나 인성 등은 그리할 수 없다. 더구나 영성은 말할 것도 없다.
며칠 전 다녀온 설악산의 단풍이 절정이었다. 이때쯤이면 설악산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명산 들은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눈부시다. 화려하다. 아름답다. 이토록 물드는 계절을 수십 번 맞고 있는데, 그 세월을 살아온 나는 어떤 물이 들었을까? 또 올가을에는 어떤 색으로 물들어 갈까?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내 얼굴, 특히 하나님이 바라보시는 나의 모습은 어떠할까? 설마, 링컨이 말한 성경 한 구절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의 얼굴은 아닐까 두렵다.
시내 산에서 기도한 후 십계명을 받아 내려오는 모세의 얼굴 피부에서는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출 34:29-30)고 했는데, 그런 정도는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다운 얼굴은 되어야 할 것이다. 거기에는 거룩한 삶이 따라가야 한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5) 하신 말씀처럼, 영성 깊은 얼굴은 기도와 말씀 생활에서 나온다,
다시 한번 더 자문해 보자. 나는 어떤 물이 들었을까? 그리고 나는, 이 가을날 무슨 물이 들어가고 있을까?
산다는 것은 물들어 가는 것이다.
淸水 ehc3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