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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광석교회
이런 교회, 이런 목사도 있습니다
2026-02-09 오전 9:40:00    성결신문 기자   



부천 광석교회와 이상수 목사 이야기다. 이상수 목사는 충북 단양의 금수산 밑의 산골에서 태어나 20리가 넘는 대가초등학교를 다녔고 중학교는 목사님이 교장이신 기독교 중학교를 다니면서 기독교 신앙을 처음 배우게 되었으며 고등학교도 기성에서 운영하는 학교를 가게 되었다.

1. 고등학생 때 우상인 성황당을 불태우다  
 
기독교 신앙을 배워 처음으로 담대하게 믿음의 행동을 보인 것이 바로 온 동네 사람들이 신으로 섬기는 성황당을 불태우는 일이었는데 마을에는 모든 사람이 정초 때만 되면 성황당에서 떡을 해놓고 제사를 드리며 복을 빌고 있었다. 

당시 고등학생인 나는 “동네사람들을 위해서는 성황당을 불태워버려야겠다”는 마음이 강력히 치솟아 친구들을 설득했지만 친구들은 “성황당을 불태우면 큰일난다”며 모두가 거부했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미리 준비한 석유를 성황당에 뿌리고 성냥불을 붙인 후 산으로 도망가 밤새 지냈다. 

산에서 내려다보니 동네사람들이 성황당의 불을 끄느라 정신없지만 나무로 지어진 성황당이라 순식간에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다음날 동네 사람들은 내가 성황당을 불태웠다는 것을 알고 나를 불러 “너 때문에 이제 성황당 신이 노하여 너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며 너 때문에 이 동네가 망하게 되었다”며 호되게 야단쳤으나 나는 “성황당 신이 어디 있느냐”며 보란 듯이 성황당 옆에 타다 남은 고목들까지 다 톱으로 베어 집으로 가져와 화목으로 사용했다. 

결국 그렇게 해서 동네 우상인 성황당은 없어졌고 나는 그 자리에 마을 쉼터를 만들어 놓았다. 그 당시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어린 마음에 성황당을 불태운다는 마음은 진짜 하나님께서 주신 감동이었고 우상을 불태우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증표였다.  

2. 소명을 거절하다 엄청난 고난의 길을 걸었다   

김순옥 사모와 결혼하고 시골에서 평신도로 한창 신앙생활 할 때 목회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목회사역의 길보다는 돈 많이 벌어 헌금도 많이 드리고 봉사도 많이 하는 장로로 헌신하고 싶었다. 처음 결혼하고 우체국에 다니면서 학교 앞에 문구점도 운영하였고 중앙일보 신문지국도 운영하면서 돈 많이 벌어 매주일마다 십일조 드리는 재미로 교회를 다닐 정도였다. 

그러나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우체국뿐 아니라 여러 가지 하던 일들을 다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와 사업을 시작했다가 사기당하여 3개월 만에 폭삭 망했다. 그래서 오갈 데가 없어 부천에 와 연탄창고에 살면서 7년 동안이나 진짜 별의별 고생을 다 해보았다. 

창문도 없는 연탄창고에 살다 보니 집사람이 시집올 때 해 온 가구들이 방에 들어가지 않아 모두 버리고 가구 없이 살았다. 그렇게 연탄창고를 수리해서 살던 중 쥐가 방바닥에 구멍을 뚫어 연탄가스에 취하여 우리 부부는 병원에 입원하여 산소마스크로 호흡하기도 했다.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는지 젖을 뗀 지 얼마 안 된 아들과 어린 딸을 시골 부모님께 보내고 돈 버는 일에만 몰두하여 무슨 사업이든지 하기만 하면 돈 벌 것 같은데 하기만 하면 망했다. 

3. 뒤늦게 하나님의 부름에 순종하여 교회 개척을 준비하다  

그렇게 고생하다가 뒤늦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33살에 감리교 신학교를 갔는데 신학교 갈 돈이 없어 다니던 교회 선교회에서 등록금을 대주어 겨우 입학하게 되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여전히 연탄창고에 살고 있던 중 중동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철거지역에 살았기에 아파트를 임대로 입주하게 되었고 1993년경 교회를 개척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아파트와 가까운 곳인 길가 밭에다 천막을 치고 교회를 시작하려고 했었지만 땅 주인들이 허락을 안 해 고민 중에 있던 어느 날 교회 개척을 위해 아파트 뒷 베란다에서 밖을 내려다보는데 바로 눈앞에 가건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가건물은 아파트 현장사무실과 식당 등으로 사용하던 것인데 아파트를 완공한 후 텅 비어 있던 건물이었다. 마음에 감동이 오기를 “아! 저 건물을 빌려서 교회를 개척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준비 기도를 한 후 담당 현장소장을 찾아 “저는 전도사인데 가건물을 좀 빌려주시면 거기서 교회를 개척하고 싶습니다. 회사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지 나갈테니 나갈 때까지만 가건물을 빌려달라”고 했더니 현장소장이 “아! 전도사님 잘 오셨습니다. 가건물을 임대할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땅을 사십시오. 제가 그 땅을 사도록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땅은 유치원부지로서, 매매가 되지 않았는데 그곳에 교회를 건축하되 지하를 많이 파서 잘 활용하시면 좋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돈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아직 교회를 개척하지 않아 성도도 하나도 없구요. 그래서 땅을 살 수가 없으니 가건물에서 교회를 개척할 수 있도록만 좀 도와주세요.” 그런데 그 현장소장은 내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고 우선 그 땅을 살 수 있도록 주택공사 담당자를 만나게 해주겠다면서 자기 명함을 주더니 주택공사 토목부장을 찾아가라고 해서 갔더니 그는 즉시 주택공사 본사로 전화를 걸어 “부천에 있는 땅을 사실 분이 있으니 가거든 잘 안내해 드리라”고 했다. 

나는 돈도 전혀 없고 아직 교회를 개척하지도 않아 성도도 없기 때문에 교회를 건축할 땅을 산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하나님께서 이상한 방향으로 자꾸 인도하셨다. 그래서 나는 먼저 아파트단지 안에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를 알기 위해 그때부터 수시로 그 땅에 무릎 꿇고 집중적으로 기도하던 어느 날 환상을 통해 “광석”이라는 선명한 간판글씨가 보이면서 “이곳에 광석교회를 세우라”는 마음에 감동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그 땅에 광석교회를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땅을 구입하기 위해 집사람이 회사에서 받은 봉급 40만 원 중 10만 원을 빌리고 타인에게 돈을 빌려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땅을 6억 3천여만 원에 분양받았다. 

4. 지하 1층 지상 3층 옥탑 2층의 800여 평 건물을 건축하다  

그 땅에 지하 1층 지상 3층 옥탑 2층의 연건평 800여 평의 건물을 15억이 넘는 금액으로 건축했는데, 땅값이 6억 3천만 원, 건축비가 15억 3천만 원, 부가세 1억 5천만 원, 설계비 민원해결비 재판비 등 총 25억 정도 들어갔는데 지금도 25억 원이면 큰돈이지만 30여 년 전에는 25억이 정말 큰돈이었다. 그런데 나는 집사람에게 빌린 단돈 10만 원뿐이었고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다 이루어가셨다. 

5. 광석교회가 창립되다 

드디어 1996년 1월달에 하나님의 은혜로 지하 공사현장에서 우리 부천지방회 주관으로 광석교회 창립예배를 드렸고 3월에 준공이 되어 1층에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인가받아 운영하였으며 그렇게 건물을 완공하고 지하를 교회로 인테리어 공사를 하여 광석교회를 개척하자 아파트단지라 전도하지 않아도 매주 성도들이 모여들어 2년 정도 되자 교회가 가득 찰 정도로 성도들이 많았다. 

6. 위기에서 사람을 의지하려는 큰 실수를 하다  

교회가 한창 부흥되던 중 전혀 생각지도 못한 IMF라는 경제 한파가 몰아치면서 나는 엄청난 빚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대출은행이 부도나고 이자가 사채처럼 많은 모든 빚을 혼자 감당해 오다가 성도들이 200여 명 가까이 되자 인간을 의지하려는 마음에 빚을 나누어지기 위해 권사도 여러 명 세우고 부흥회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부흥회를 시작하면서 강단에서 찬송을 인도하던 중 빚쟁이들이 몰려와 강단에서 강제로 신도 못 신고 끌려 나가 3일간 감금당해 담임목사인 나도 없이 부흥강사 혼자 부흥회를 하고 갔는데 부흥강사가 성도들에게 담임목사님 혼자 모든 빚을 감당하고 있으니 성도들도 같이 짐을 지라고 설교했단다. 그런데 내가 감금에서 풀려나와 보니 부흥회는 끝났고 그 주간부터 성도들이 흩어지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그 많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갔는데 이유는 목사님이 진 빚을 왜 우리에게 부담시키느냐는 거다. 

나는 결국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을 인간을 의지하려고 했다가 더 많은 어려움을 당하고 말았다. 

7. 장기금식기도를 통해 모든 문제의 응답을 받다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마음이 평안했던 때가 바로 모든 것을 잃었을 그때였다. 나는 목회자가 된 것도 하나님의 분명한 부르심이 있었고, 또 교회를 시작할 때도 광석이라는 하나님의 응답을 분명히 받았지만 은행 채무뿐만 아니라 공사비 등으로 모든 건물이 경매당하여 오갈 데가 없도록 엄청난 어려움이 한꺼번에 몰아닥치자 3주간 금식기도 하러 대한수도원에 갔었고 21일간 장기금식기도 거의 마지막 무렵 하나님께서 수많은 환상을 통한 응답을 주셨는데 그중 통나무 간판에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그리고 마지막 날도 여러 가지 환상의 응답뿐만 아니라 역시 통나무 간판에 “너는 내 것이라” 이렇게 21일간 장기금식기도 중 마지막 이틀 동안 10가지가 넘도록 환상을 통한 기도응답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돌아왔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응답대로 하나하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8. 경매당했던 1층 건물과 교회를 다시 찾거나 매입하다  

장인어른이 경매받아주신 작은 상가 2층에서 놀이방을 운영하면서 몇 년 동안 주일마다 예배드리다가 기도 응답대로 1층의 상가들을 되찾거나 구입하였고 1층에서 오랫동안 예배드리다가 17년 만에 지하 교회를 다시 구입하여 대대적으로 리모델링 공사를 직접하고 지금처럼 예배드리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건물들을 하나하나 다시 찾게 하셨고 작지만 우리 부부가 살기에는 아주 적당한 아파트도 교회 옆에 주셔서 살고 있다. 25억 원이나 되는 그 많은 개인적인 빚도 성도들의 도움 없이 다 해결되었고 교회도 지하 교회를 다시 구입하거나 인테리어비용 등 8억 5천만 원의 빚이 있었지만 모든 빚을 역시 성도들의 도움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다 청산하고 7년 전에 우리 지방회 주관으로 헌당예배를 드렸다.  

9.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어떤 이들은 목회성공이 큰 교회를 이루거나 사례비 많이 받으며 큰 아파트에 살면서 고급 자동차를 타고 섬김을 받으면 목회 성공했다고 한다.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큰 교회에서 많은 성도들로부터 섬김을 받으며 명예를 누리는 것이 목회 성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사야에게 하신 말씀과 부족한 나에게도 말씀하신 것처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너는 내 것이라”는 확실한 응답을 받는 것이 진짜 목회의 성공이라고 본다. 

결론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광석교회를 섬기며 목회를 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광석교회 제공>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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