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정오, 종로2가 파고다 공원에서 자주, 평화, 저항의 3대 정신이 담긴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독립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가장 어두웠던 밤에 가장 밝은 횃불을 들어 올린 사건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군과 경찰을 풀어 만세운동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주동자와 가담자들을 색출, 구금, 사형으로 다스렸다. 2개월 남짓 펼쳐진 독립 만세운동은 일제 군경의 강력한 제압으로 끝났지만, 민족 가슴 가슴에 자유에 대한 열망을 심어주었고, 뜻있는 인사들은 만주로 나아가 독립군대를 조직 운영하며 일제에 맞서 싸웠다. 또 상해로 나아가 임시정부를 세워 독립운동을 이어 나갔다.
삼일 만세운동의 영향을 받은 중국에서는 ’조선이 항일 운동을 하는데 우리도 해야 하지 않느냐?‘ 하여 5.4운동이 일어났고 영국의 지배를 받던 말레이시아에서, 또 프랑스의 지배를 받던 베트남에서 항일 운동이 일어났으며, 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던 인도에서는 간디에 의한 비폭력 저항 독립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당시 조선 인구는 1,600만여 명으로 기독교 신자는 1.6% 정도인 20만여 명이었는데, 독립선언서 서명 33인 가운데 16인이 크리스천이었고 전국 독립운동의 70%가 교회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이런 사실을 생각해보면 당시 조선 교회는 계시록 3장의 빌라델비아 교회같이 ‘작은 능력을 가진(계 13:8) 교회’였지만, 우리 민족의 근대사에 큰 획을 긋는 크고도 놀라운 일을 해냈던 것이다. 독립운동이 펼쳐진 후 7년이 지난 1926년에 시인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시를 발표하여 의식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다.
삼일 만세운동 106년을 지나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경제전문잡지 포보스(Forbes)에서 발표한 2026년 세계강대국 순위 6위로 7위의 프랑스, 8위의 일본을 앞지르는 나라가 되었고, 한국교회 역시 전 국민 20%나 되는 큰 교회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미미하고, 3.1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그때 신자들보다 나라 사랑, 자유 수호 의지는 쇠퇴 된듯하여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이제 생명이 약동하는 봄이다. 시인 이상화의 시 마지막 줄에는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라고 나라 빼앗긴 비분강개(悲憤慷慨)의 심정을 쏟아냈는데, 금년 대한민국은 빼앗길 들도 없으니 올봄에는 벚꽃이 만발하고, 한국교회도 주춤했던 영적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한다면 어떨까 싶다.
淸水 ehc3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