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가는 소리를 듣자던 어느 시인의 글이 있다. 성찰의 초대장 같은 글이라 여겨진다. 새끼 잃은 어미 사자처럼 으르릉 거렸던 더위로 우리는 일상이 무너질 만큼 지쳐갔고, 산만해지고 무기력해 졌다.
이런 나를 추스르려면 9월의 강가에 나가 강물이 여물어가는 소리라도 들으며 성찰하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바울은 강 대신 사막으로 들어가 3년여의 깊은 성찰의 시간을 보내며 보석처럼 빛나는 영성의 사람으로 세워진다.
그리고 9월이 오면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너 나 없이 치유 받아야 할 상처 몇 개는 지니고 있다. 더구나 지난여름 동안 무더위 같은 삶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많은 내상(內傷)을 입었다. 또 덥다는 핑계 앞세워 멀어진 기도와 말씀으로 영혼도 쇠락해졌다.
나태주 시인은 ‘이제 치유의 계절이 찾아온다 / 상처받은 짐승들도 / 제 혀로 상처를 핥아 / 아픔을 잊게 되리라’(나태주 - 다시 9월)라 했다.
가을이 깊어가기 전, 수술대 위에라도 올라 강도 만난 나그네를 고치시던 선한 사마리아인 같은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상처투성이가 된 나그네에게 부어졌던 기름과 포도주(눅 10:34)가 우리에게도 부어져 내적 치유와 영혼 소생을 입어야 할 것이다.
또 9월은 열매를 향해가는 성숙의 시간이다. 과수원에서는 뙤약볕 아래 온갖 과일들이 향기, 단맛, 무게를 더하며 익어가고 있다.
9월은 그 열매를 성숙시켜가는 마지막 시간이다. 익어가야 할 9월을 놓치면 결실의 계절에 쭉정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로 익어가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를 앞세운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하고, 그분의 겸손, 온유, 섬김을 배워 체득시켜가야 할 것이다.
풀잎에 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나니 가을 색이 곳곳으로 퍼져간다. 여물어가는 강물을 보면서 안도현 시인의 ‘9월이 오면’을 음미한다.
‘9월이 오면 / 9월의 강가에 나가 / 우리가 따듯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 세상을 적셔야 하는 것을’ 성찰의 자리를 찾아 나를 돌아보고, 치유와 성숙의 은총을 받아 우리 모두 따뜻한 피로 흐르는 강물이 되어 세상을 적셔가는 가을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행복할 것이다.
淸水 ehc3s@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