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군 서하면 월평에 자리한 서하제일교회(윤성균 목사).
성도 3가정이 모이는 작은 농촌교회지만, 지난 30여 년의 역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면 길을 여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여정이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시작한 교회는 자비량 목회와 선교를 지향하며 지역을 섬겨왔고, 올해는 노후한 예배당을 리모델링하며 새로운 사역의 전기를 맞았다.
▶▶40일 금식기도로 확인한 농촌교회 개척의 부르심
서하제일교회의 시작은 1993년 여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농어촌교회 40여 곳을 선교하던 등촌제일교회 청년으로 신학을 공부하던 중 같은 교회 최광식 집사로부터 “고향에 교회가 없어 6년 동안 기도했다”며 사명자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마땅히 나서는 사람이 없자 그 부담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왔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싶었던 그는 40일 금식기도에 들어갔고, 기도 가운데 농촌교회 개척에 대한 부르심을 확인했다. 그리고 신학을 마친 뒤 경남 함양군 서하면 월평으로 내려왔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시작된 교회
1994년, 등촌제일교회의 낙도선교사로 내려왔지만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예배처소였다. 빈집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유교적 전통이 깊은 ‘선비의 고장’에서 외지인에게 예배를 드릴 공간을 내어주는 일은 쉽지 않았다.
잠시 서울로 올라왔던 그에게 당시 담임목사였던 강의구 목사의 전화가 걸려 왔다.
“개척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죽을 각오도 없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
그 말을 듣고 다시 함양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토록 구하기 어려웠던 빈집이 마련돼 있었다.
누에를 치던 낡은 빈집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쥐가 뛰어나올 만큼 열악했지만, 도배하고 장판을 깔아 임시 예배처소를 마련했다. 쌀 뒤주를 강단 삼아 첫 예배를 드렸고, 동네 어린이들을 모아 주일학교를 시작했다. 34세 노총각 목회자의 농촌교회 개척이 그렇게 시작됐다.
▶▶무일푼의 예배당 건축을 하다
교회 현판만 세워놓고 사역을 시작할 수도 있었지만 당시 지방회 감찰장의 원칙은 분명했다. “예배 처소 5평 이상이 준비되지 않으면 교회 설립을 허락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때부터 1년 안에 예배당 건축을 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냥 기도만 해대는 내가 불쌍하셨던지 하나님의 은혜로 갑자기 30평 조립식 건물이 지어지고 골조만 세워진 상태에서 11월 14일 창립예배를 드렸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확실히 경험했다. 얼마나 감사했는지 창립예배 후에는 밥 먹는 것도 잊고 마무리 공사를 했다.
그러나 기쁨 뒤에는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빚으로 마련한 건축비를 갚는 데 10여 년이 걸렸다. 등촌제일교회에서 보내오는 선교비가 생활과 사역의 전부였던 시절에는 지방회에 참석할 차비조차 없을 때가 있었다. 결혼 후에는 두 아이의 분유 값을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기도 했다.
▶▶“도움을 기다리는 교회가 아니라 나누는 교회로”
어려움 속에서 목회자는 농촌교회의 자립에 대해 고민했다.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생업으로 사역을 감당하는 자비량 목회를 결심했다.
양봉을 시작했고, 지역특산물인 곶감도 만들어 판매했다. 이를 통해 교회가 조금씩 자립의 기반을 마련했고, 동시에 선교와 구제에도 힘을 보탰다.
처음부터 자립과 선교를 함께 놓고 기도했다. ‘농촌교회이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만 기다리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해 자립하고 다시 다른 곳을 섬기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했다.
성도들과 함께 건축헌금을 모으는 한편 선교헌금도 마련했다. 매년 전반기와 후반기에 등촌제일교회에 400여 만원의 선교비를 보내며 낙도선교에 동참했다. 자신이 도움을 받았던 교회로부터 다시 선교의 빚을 갚는 마음이었다.
서하제일교회는 매일성경으로 말씀을 묵상하며 매월 셋째 주일에는 ‘사랑의 헌금’을 드린다. 하나님께 드린 헌금을 다시 다시 돌려주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실천하기에 힘쓰고 있다.
▶▶예배당 리모델링을 하다
30년이 넘은 예배당은 노후화가 심해져 한때 새롭게 건축할 계획도 세웠다. 성도들과 허리띠를 졸라매며 오랫동안 건축헌금을 모았다. 그러나 인건비와 자재비 상승이 건축헌금 적립 속도를 앞지르면서 재건축의 꿈은 점점 멀어졌다.
그러던 중 예배당 지붕에 누수가 발생했다. 지붕을 새롭게 손질하고 보니 오래된 건물을 철거하기에는 아까운 마음이 들었다. 결국 실내와 외부를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바꿨다.
성도 3가정의 작은 교회가 자력으로 감당한 리모델링 비용은 약 6천만 원.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성도들의 헌신과 하나님의 은혜로 공사를 마무리했다.
윤성균 목사는 “작은 교회가 자력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들의 헌신이었다”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다.
▶▶양봉 자비량 목회에 판로가 막히다
자비량 목회의 중요한 기반이었던 양봉도 최근 새로운 어려움을 맞았다. 계속되는 사회적인 경제적 어려움으로 주요 거래처의 소비가 크게 줄었고, 올해는 아카시아 꿀이 풍년을 이루면서 재고까지 쌓였다.
윤 목사는 이를 두고 “하나님께서 일을 조금 줄이라는 사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양봉 규모를 축소하기로 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판매하기 어려운 재고를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던 중 뜻밖의 만남이 찾아왔다.
리모델링을 마친 교회를 격려하기 위해 등촌제일교회 낙도선교팀이 서하제일교회를 방문한 것이다. 선교팀과 기도제목을 나누며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양봉과 꿀의 판로 문제도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됐다.
30여 년 전 서하로 내려올 수 있도록 선교사로 파송했던 교회가 이제는 어려움에 놓인 농촌교회를 다시 찾아와 격려하고 기도하는 동역자가 된 것이다.
서하제일교회가 걸어온 30년의 길에는 특별한 성공의 공식이 있었던 것이 아니다. 빈집 하나 구하기 어려웠던 땅에서 시작해, 쌀 뒤주를 강단 삼아 예배드리고, 자비량으로 생계를 이어가며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작은 교회가 다시 선교와 구제의 손을 내밀었다.
성도 3가정의 작은 교회지만 서하제일교회가 품은 꿈은 작지 않다. 목회자는 오늘도 이 지역에 복음의 등불이 꺼지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러했듯 앞으로의 길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