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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보다 목사의 길을
사장보다 목사의 길을
2016-04-07 오전 11:58:00    성결신문 기자   


김동완 목사(1917-2002)는 1940년에 경성신학교에 입학하였다. 하지만 1943년에 경성신학교가 일제의 정책을 반대한다는 이유로 폐교되자, 경성신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가정을 순회하며 가정예배를 드렸다. 1944년 일제가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용하기 시작하자, 그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본인이 운영하는 군용피복공장에 취직했다. 이 피복 공장은 군복을 납품하는 군수공장이어서 종사자들은 징집을 면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전문학교 출신임이 인정되어 일약 총무부장으로 임명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광복을 맞았다. 국내에 있던 일본인들은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일본인 피복 공장의 사장도 일본으로 떠나가기 전에 공장 간부사원들을 모두 불렀다. 간부사원들 대부분은 일본인들이었고, 한국인은 오직 두 명뿐이었다. 하나는 총무부장 김동완이고, 또 하나는 공장장 최 씨였다. 

피복 공장의 사장은 침울한 얼굴로 간부사원들 앞에 섰다. 사장은 드디어 공장을 누구에게 맡겨야 할 것인가를 발표해야만 했다. 사장은 먼저 김동완에게 공장을 넘길 테니 맡아서 운영하라고 했다. 

그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기만 하면, 그는 일약 공장의 주인이고 사장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앞으로 교회의 목사가 될 몸입니다. 신학교에 재학 중 신학교가 폐교되어서 할 수 없이 이곳에서 일했지만, 이제 해방이 되었으니 신학교도 곧 복교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서 돈 버는 일보다 영혼들을 구원하는 영적 사업에 종사할 몸이므로 사양하겠습니다” 결국 공장은 최 씨에게로 갔다. 

김동완에게 있어서는 든든한 기업의 사장이 되는 것보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양떼를 치고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하여 신학교에 복교하였고, 1947년에 목사안수를 받아 많은 교회에서 목회했으며, 1965년에는 교단합동과 함께 교단 총무가 되어 교단의 발전에 크게 공헌했다(마 4:22, 13:44, 시 116:12, 고전 9:24-26).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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