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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의지의 한국인으로 훈련시킨 CEO
조석환(명일성결교회장로)
2010-01-15 오후 1:43:00    성결신문 기자   


한국정보관리협회 회장 조석환 박사
(명일성결교회 장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처음창조하신 이후에 인류역사상 세번째 변혁인 디지털 혁명이 본 궤도에 진입한 후 인프라와 인터넷망을 통해서 짧은 시간에 전 세계로 파급되고 있다. 농업혁명은 5천년이 소요되었으나, 디지털혁명은 30년 만에 전 세계로 확산되는 조짐으로서, 몸으로 뛰던 산업시대의 구호는 과거의 문명으로 밀려나고 지식정보화가 이끄는 새로운 문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 변혁을 가져오고 있다. 일찍이 사도바울은 성경에서 신앙의 경주자가 최후의 승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변화의 삶을 살라고 했다.

그 진리는 변화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음을 의미하며 변하지 않으면 개인만이 생존을 어렵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흥망과 진퇴를 가름하게 된다는 말이다. 성경은 이미 잠언이나, 로마서를 통해서 지식기반사회구조, 내용, 환경, 제도의 변화를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삶의 지표를 제시했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충격과 자극을 주어 이전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새로운 생활방식과 새로운 사회제도, 새로운 경제정책을 만들어 그것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방법을 실천하는 표준화시대가 우리 앞에 도래한 것이다.

이제는 성도들의 생활도 믿음을 향한 영성까지도 그 단계를 업그레이드 하도록 요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실천해 나가면서 이윤을 창출하고 그 이윤으로 하나님의 사업 즉 목회자의 목회철학을 도우는 말없이 조력하는 조석환 장로의 모습을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사)한국정보관리협회가 하는 사업을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한국정보관리협회의 구체적인 사업은 고도 정보화 사회의 진전에 따라 각종 경영정보화, 사무자동화 및 전산 업무 관리 등 정보화 관리의 기법 기술의 연구개발과 국내외 정보 및 학술교류를 통하여 국민의 정보화 사회 적응 능력의 향상과 우리나라 정보화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것인데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정보화 관리 분야인 사무자동화 운영체제 언어능력 등에 관한 기능 훈련 및  자격검정의 시행과 관련제도의 연구를 하는 것이 이 협회의 목적이라 하겠습니다.

협회가 구체적인 사업목표를 달성하려면 국가가 실시하는 국가기술자격시험 수준의 기술자격종목을 개발하여야 하는데 당시에는 국가기술자격법에 국가기술자격종목과 비슷한 유사종목이 있으면 형사처벌을 하는 법조항이 있어서 누구도 기술자격과 비슷한 종목을 개발하여 시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제게 지혜를 주셔서 국가기술직종과 유사하기는 하지만 명칭을 다르게 문서실무사(국가기술자격법에서는 워드기술자격-대한상공회의 주최)라는 직종을 개발하여 자격기술 역사상 정보관리협회에서 민간자격를 치른다는 공문을 처음으로 전국교육기관에 내어 보냈더니 국가기술자격시장이 지각변동이 일어나, 국가기술자격을 위탁받아서 담당하는 기관은 물론이고 그동안 국가기술자격만 치르던 교육기관들이 이권을 누리다가 기득권을 놓게 되니 그 저항은 정말로 견디기 힘든 상황이였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서에 기록된 것처럼 ‘환란 날에 날 부르라 네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는 말씀을 굳게 잡고 1년이 넘도록 저항하는 그들과 때로는 맞서고 때로는 설득하며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자격기본법이 공포되고 3년이 지나도록 민간이 개발한 자격증을 국가가 국가기술자격종목과 수준이 같으면 국가공인을 해주도록 법적으로 보장되어 있는데도 그것을 정부가 실시하지 않아, 저는 국무총리산하 행정 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걸어 승소하여 대한민국 국가공인 시대를 열기시작했습니다.

또한 국가가 민간자격을 공인해 놓고도 후속조치로 국가기술 자격처럼 취득자에 대한 가산점수를 부여하지 않아 대통령산하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하여 가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495.87m²(150평)의 사무실에 13명의 본사직원과 전국에 17개의 지부를 두고 백억 원의 지식자산을 보유하는 거부를 하나님께서는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야말로 드라마틱한 사업을 펼치는 기관의 장이 되었죠.이 일로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수상하는 행운을 안기도 했습니다.  지난 2009년에는 정부로부터 한자어 자격종목을 공인 받아서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국가공인 민간자격시장을 선도하는 기관이 되었음은 하나님의 축복하심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업을 하게 된 동기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지요
저는 60년대 초 미8군 부관참모부에서 키펀치를 치는 일을 시작으로  IBM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접하면서 당시 남이 감히 생각하지 못했던 정보화 사회를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컴퓨터 하드웨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도 중요하지만  정보데이터를 기계에 축적하여 정보를 검색하고, 가공처리 하는 첫 번째 단계인 타자기 즉 키보드에서 진화된 컴퓨터 키보드의 입력 솔루션교육개발은 무한한 경쟁력으로 이윤창출 분야에서 틈새시장임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누구도 관심이 없어 가지 않는  외길 끝에는 반드시 성공의 고부가가치 이윤창출이 있음을 확신하고 40여년의 세월을 달려왔습니다.

고등학교 교사시절 많지도 않은 봉급을 받아서 매번 여름방학이면 당시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타자기 키보드 교육의 대가인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교육대학원장 Lawrance W. Erickson박사의 연구실을 찾아서 2주간의 교육을 받고 돌아와서 새로운 키보드 교육방법을 개발하였습니다. 또한 시간이 있을 때 마다 일본 동경대학 이과대 전산학과를 찾아가서 야마다 히사오 박사에게 공학적인 키보드의 교육방법에 대한 새로운 행동의 과제를 찾아내는가 하면, 대서양을 넘나들면서 유럽등지의 교육기관을 찾아가  새로운 키보드 교육방법에 대한 연구에 젊은 청춘을 다 받쳤다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이 연구를 하는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야! 조 장로야, 연구만 하지 말고 이제는 네가 연구하는 것들이 고부가 가치가 되어야 가정과 교회에 기여 하지 않겠느냐?” 는 음성이 마음속으로부터 울러 나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1985년도에 준비 없이 이 사업을 시작했다가 집까지 팔아먹고 알거지 신세였는데 “하나님께서 모험을 통해 나를 단련하시는 구나”를 깨달고 시 40세라는 불혹의 나이에 성결대학교 경영학과에 들어가 졸업을 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석. 박사 코스워크를 마치고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구약의 욥기 서에 기록한대로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 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 : 10)’는 진리.자유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컴퓨터키보드에 대한 그동안의 연구가 모두 결실이 되어 제 앞에 다가와 고부가 가치의 자산이 되어 이윤창출이 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제공인기술자격과 남북통일 자격사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국제공인자격증은 100년전에 설립된 선진국형 국제 비즈니스 학회가 있는데 매년 번갈아가면서 연차총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이 학회는 2000년도 헬싱키 대회 때 한국이 정식으로 가입하였습니다. 이 학회에서 공인한 종목이 영어자격종목을 비롯해서 20개가 됩니다. 지난 2009년도 5월 16일부터 25일까지 서울에서 컨퍼런스를 하고 제가 고향집까지 방문해서 한국의 발전상을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남북통일 사업으로서는 2002년부터 남북 IT실무위원이 되어 평양을 드나들면서 (사)한국정보관리협회가 현재 실시하고 있는 첫 번째로 공인받은 문서실무사 자격종목을 북한과 규정을 통일하여 시행하자는 합의와 컴퓨터 선택자판, 정보기술용어사전, 정부기술용어 우리말 표준화 사례집, Ontology적 학술용어학 등을 통일해서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 통일한국에 사용되도록 준비 중에 있습니다.

이 공적을 인정하여 지난해 노르딕 학회가 서울에서 열려서 개성에서 남북학자들과 함께 이연구물을 발표하려고 하였는데 그만 남북정치가 경색되는 바람에 도라산에서 개성을 보고 돌아갔는데 지난 11월 12일에서 18일 사이에 우리를 노르딕 컨퍼런스가 개최되는 핀란드에 초청해서 올 8월에 평양에서 개최하자는 제의 가 있어 지금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일이 끝나면 함께한 노벨재단 위원회가 저를 노벨평화상에 추천할 것이라니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훈이 매우 긴데 이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물론 본 협회의 사훈은 매우 깁니다. 그 근원지는 성경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기 23 : 10)’입니다. 이 말은 모험을 통한 위험감수의 장점을 활용 하는 마인드를 기르는 진리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첫째 모험을 통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이들보다 빨리 배울 수 있다는 마인드이며, 둘째, 모험을 통한 위험 감수는 폭넓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마인드 이고, 셋째, 모험을 통한 위험감수는 안정지향적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장애물을 빨리 만나서 해결 한다는 마인드입니다. 끝으로 네번째는 모험을 통한 위험 감수는 자신이 당면한 장애물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과 전술을 신속하게 구사한다는 마인드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위험 없이 이익을 얻는 것, 위험 없이 경험하는 것, 일하지 않고 보상받는 것은 우리가 태어나지 않고 사는 것 만큼이나 불가능 하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만약 아무것에도 도전하지 않는다면 실패는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삶은 이미 석양에 기울고 있는 해와 같으며 지혜로운 자는 모험을 통한 위험감수로 큰 성공을 거두지만 지혜롭지 못한 자는 모험을 통한 위험감수로 좌절에 이르게 된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제까지 사업한 성과와 현재진행중인 사업의 동향에 대해 말씀해 주시지요
(사)한국정보관리협회가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아 시행해서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이 백만 명에 가까우며, 국제자격증 취득자도 사십만 명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셔서 생각하지 않았던 국군정보화가 활발히 진행되어 (사)한국정보관리협회 인터넷이 국방부에 접속되어 전군의 부대 안에서 시험을 보는 기회가 제공되어 현재 전군의 부대에 문서실무사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사십만 명이 합격증을 취득, 사회로 진출하는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가족에 대해서 좀 알고 싶은데요?
저는 원래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저와 저의 어머니, 그리고 지금 성결대학교 공과대학 학장으로 있는 조석팔 장로와 삼모자가 함께 살았는데 엄격하신 어머님 하순기 권사님의 기도와 사랑의 매로 오늘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신앙의 대를 이어가는 행운을 안았습니다.

결혼해서 1남 3녀를 두었는데 첫째 딸은 성결대학교 영문학과를 나오고 연세대학교에서 영어교육을 전공하고 전문대학에서 강의를 하면서 대학원 박사과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둘째딸은 성결대학교 지역개발학과를 나와서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에 재학 중이며 지금은 세종문화회관 오페라 무대감독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셋째 딸은 9년 전에 대한민국 차세대 IT 정부장학생으로 플로리다 대학 공과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로펌 회사에 취직해서 근무하다가 변리사시험에 합격하고 지금은 변리사가 되어 박사논문을 시작하고 있는데 아마 9월쯤이면 학위를 받는다고 합니다. 막내아들도 연세대학교 신과대학에 다니다가 누나를 따라 플로리다 대학에서 수강하고 있습니다.

경영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도전하면서 그 고통과 시련은 말 할 수 없었습니다. 40세의 대학 학부과정의 입학은 지식의 부족함은 물론이고, 사남매를 남편대신 맡아서 기르면서 남편의 학부형 노릇을 하는 아내의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순간순간 마다 가슴이 찡해옴을 느낍니다. 아내의 고통도 고통이지만 주변사람들이 염려해 주는 척하면서 시기, 질투, 원망 등을 들으면서 석·박사수업에 매진해야 했던 심정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한번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아내는 “내 남편 조석환 장로를 지치지 않게 해달라”는 하나님을 향한 결단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은 정말로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번은 영문 아티클에 관한 발표숙제가 있을 때 현재는 성결대학교 공과대학장으로 있는 조석팔 장로 (당시 삼성전자 종합연구소 연구부장 근무)에게 다음날 발표하는 발표 자료를 보내 자료가 정리되면 호텔로비나 집, 삼성종합연구소가 가까운 잔디밭에서  발표에 대한 코멘트를 받고 돌아와서 당시 고등학생인 둘째딸 정현이에게 워드로 정리하라고 이르면 자기 숙제는 미루어 두고 아버지가 다음날 발표할 리포트를 정리해 주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정현이가 리포트를 정리하는 동안 잠이 너무 와서  잠시 잔다고 머리를 벽에 기댄것이 새벽 두세 시를 넘기기가 일쑤였으나 그때까지도 정현이는 레포트를 워드 작업하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은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못합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저는 성결대학 설립이후에 첫 번째로 연세대학교에서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는 영광을 안게되었습니다.

앞으로 조 장로님의 사업계획을 말씀해주시지요
앞서도 말씀드렸지만 향후 사업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사업을 할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무한한 축복을 해주셨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교수요, 박사요, 교회적으로는 수석장로가 되었습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내가 보살펴준 많은 사랑, 아무 문제없이 커준 아이들, 교회적으로는 저를 위해서 기도해준 당회장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저를 좋아하는 성도들의 기도로 이런 자리에 있게된 것입니다. 이제 고부가 가치로 인한 이윤창출로 교회 목사님의 목회사역에 힘이 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계획을 할지라도 하나님이 해주셔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기자 : 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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