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설교
권순달 목사(교단 총무)
세상의 모든 것에는 기반이 있다. 집을 지을 때도 기초를 잘 다져야 안전하고, 찌개나 국수도 육수라는 바탕이 잘되어야 제 맛이 난다. 인생도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 같지만 부모와 자식, 부부 사이의 관계가 건강할 때 살맛이 난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가족, 관계, 건강, 대화, 겸손, 태도, 믿음 등, 기초가 흔들리면 언젠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럼 신앙과 믿음생활의 기반은 무엇인가? 예수님은 이스라엘 북쪽 경계인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으로 제자들과 함께 가셨다. 빌립보 가이사랴, 이곳은 구약 시대에는 ‘행운의 바알’이란 뜻을 지닌 ‘바알갓’으로 불리워진 장소이다.
바알은 후에 그리스인들이 그들의 신인 판(Pan)으로 대치되었고, 이곳에서 숭배하였다. 또한 헤롯 대왕은 자신에게 이곳을 준 로마 황제 ‘아구스도’를 위해 대리석 신전을 지었으며, 분봉왕 빌립은 후에 ‘디베료’ 황제의 통치 시대에 황제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곳의 이름을 ‘가이사랴’로 개명하였다.
‘빌립보’는 욥바와 갈멜 사이에 있던 해안에 위치한 또 다른 ‘가이사랴’와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이곳의 이름을 지은 ‘빌립’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다. 황제의 이름을 붙이려면 그것에 어울리는 격식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행정중심복합도시에 ‘세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그 이름을 붙일만한 인프라, 정치, 경제, 문화 등 도시 경쟁력이 전제되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영광이 넘치는 곳, 황제의 도시, 신들의 도시인 가이사랴 빌립보! 이곳에서 초라한 갈릴리 고기잡이 제자들에게 나사렛 목수 출신 예수님이 물으셨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때 성령의 감동을 받은 베드로는 명쾌한 신앙고백을 한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지혜 부족한 신앙 후배들에게 베드로 선배님이 모범답안을 알려주셨다.
그렇다. 예수님은 내 삶의 주인, 나의 구원자, 나의 창조주요 통치자이시다. 이 신앙고백의 기초 위에 교회가 세워지고, 권능이 부어지며,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고백, 제자도의 기본 위에 비로소 자신의 위대한 사명을 풀어놓으셨다.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을 당하고 죽음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제삼일에 부활할 것이다”.
예수님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은 복음의 핵심이요, 교회를 세우는 기초이며 하늘의 문을 여는 신앙생활의 핵심이다. 하지만 예수님의 메세지는 베드로와 제자들을 당황케 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계획을 듣자마자 ‘붙들고 항변한다’. 마치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하는 아이의 팔을 잡아당기며 “그러면 안된다”고 꾸짖듯이 예수님을 만류한다.
베드로는 어째서 예수님의 말에 흥분하며 무례한 행동을 했을까? 몇 가지 짐작을 해 보건데 우선은 예수님의 말씀은 예수님께 투자한 자기 인생의 보상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결정이라 여겼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죽으신다하니 과거 상황, 즉 자신의 희생과 노력, 처자식 다 뒤로하고 종노릇하며 지내온 삶에 대해 본전 생각이 났을 것이다.
두 번째는 미래의 계획, 숫한 어려움과 희생을 감내하며 이제야 비로소 사람들의 열광적인지지 속에 왕의 비서실장으로 등극하는 꿈이 코앞에 다다랐는데, 이 꿈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당혹감이 차올랐을 것이다. 베드로의 무례한 행동은 이 땅의 삶, 육신의 생각, 자기중심적 사고의 표현인 동시에 기복적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인의 총체적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난 모습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것을 더 크게 듣는 경향이 있다.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은 크게 듣고, 싫거나 관심 없는 말은 흘려듣는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 됨과 정체성을 당당하게 고백한 제자들에게 비로소 십자가 사역과 부활의 영광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러나 사람의 일, 육신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베드로는 고난 당하고 죽는다는 말은 크게 들었고, 자신이 경험해보지 않은 부활에 대해서는 잘 듣지 않았다.
지금 눈앞에 육신의 영광과 미래가 다가오고 있는데 갑자기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 당하고 죽는다고 하니 모든 꿈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니 부활의 메시지가 제대로 들렸겠는가.
하나님의 계획보다 내 생각이 가득하고, 하늘의 영광보다 이 땅의 영광이 나를 두를 때 우리는 성령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는다. 사람의 소리는 크고, 주의 음성은 희미하게 된다. 우리가 매일 들어야 하는 선명한 복음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고난 당하시고 십자가 지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리의 영광이다.
죄와 사망이 더 이상 우리를 주장할 수 없고, 예수님은 우리의 산 소망, 승리의 주가 되셨다.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끝까지 잘 들었다면 그의 생각이 고난과 절망, 죽음에서 멈추지 않았을 것이고 생명과 영광의 문을 여시는 예수님을 찬양했을 것이다.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태양의 양면과도 같다. 태양에 가까이 가면 핵무기든, 초음속 전투기든 모든 것이 녹아버리고 형체가 없어진다. 주님 앞에, 십자가 앞에 다가갈수록 나의 모든 죄과 허물, 나의 약함, 근심과 염려는 녹아버린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꿇어 엎드릴 때 나는 없고 주님만 있다. 육은 죽고 영이 산다. 또한 부활하신 주의 손을 만질 때 굳은 마음은 녹아내리고 믿음이 살아난다. 절망의 골짜기가 메워지고 생명과 평안이 차오른다. 매였던 마음이 자유함을 얻는다.
지쳐 쓰러질 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열심히 기도해도 열매가 없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사방이 가로막혀 앞이 캄캄할 때 우리는 물어야 한다.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내가 계획한 모든 것이 형통하고, 모두가 나를 칭찬할 때 우리는 고백해야 한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는 죄 많은 세상에, 어두운 세상에, 절망 가득한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주님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셨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의 영광, 이것이 세상과 사단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이며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열쇠이다. 삶의 현장에서 날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묻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라. 더불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선포하며 육이 죽고 영이 사는 담백한 삶을 살 때 영광의 주를 뵈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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